1661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곡식과 그 밖의 다른 작물을 별로 수확하지 못했다. 1662올해 추수를 할 때까지 상황이 더 어려워서 수천 명의 사람이 기근으로 죽어갔다. 도로를 이용하기가 어려웠는데, 그건 도둑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왕의 명령으로 모든 도로에 경비대가 주둔했는데, 그것은 여행자의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아사餓死한 사람들을 매장하기도 하며, 매일같이 일어나는 살인이나 강도를 예방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몇몇 고장과 마을들이 털리고 국고(“쌀 창고는 해안의 몇 군데에 있었는데 인근 지역의 기근에 대비했고, 공덕功德에 따라서 구호물 지급자에게 왕이 내리는 상을 주었다.”[파커, “조선”, 「차이나 리뷰」ⅪⅤ, 129].)가 습격당해 곡물을 강탈당했는데 범죄자들이 잡히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