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南陽(하남성)의 종세림宗世林(종승, 宗承)은 위 무제(조조)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는데 조조의 사람 됨됨이를 매우 경멸하여 그와 사귀지 아니했다. 조조가 사공司空이 되고 국정을 이어받게 되자 조용히 종세림을 찾아갔다. "이제는 교제할 수 있겠소이까?" 그러자 종세림은 대답했다. "송백松柏의 뜻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종세림은 조조의 뜻을 거역했으므로 소외당했고 그 인덕에 어울리는 지위가 주어지지 아니했다. 그러나 문제文帝(조비) 형제는 종세림의 집을 찾을 때마다 모두 그의 의자 앞에서 독배獨拜하곤 했다. 그가 존경받았던 것이 이와 같았다. 유효표의 주.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종승은 자가 세림이고 남양 안중安衆 사람이며, 부친 종자宗資는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종승은 젊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