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상고사 3

조선상고사 한자 이두문 관계-통일되지 못한 이두문

조선상고사 - 한자漢字의 수입과 이두문吏讀文의 창작 조선상고사에 조선글이 있었다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아무 증거가 없는 말이니 최초의 쓴 것이 한자일 것은 틀림없다.한자가 어느 때 수입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대개 땅이 지나와 이어져 있어서 두 민족은 기록 이전부터 교통이 있었을 것이니, 한자의 수입도 기록 이전의 일이었음이 명백하다. 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어 도산에서 우에게 금간옥첩金簡玉牒의 글을 가르쳐주었는데, 이 글자는 곧 한자였을 것이니, 조선이 한자를 익혔음이 이미 오래되었음을 볼 것이다. 그 뒤에 한자의 음 혹은 뜻을 빌려 이두문을 만들었는데, 이두문은 곧 조선 고대의 국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국서國書’, ‘향서鄕書’ 혹은 ‘가명假名’이라 일컫고 고려조 이후에 비로소 이두문이라 ..

동아시아 역사 2017.07.02

명림답부가 혁명가인가? - 조선상고사

제5장 차대왕次大王의 피살과 명림답부明臨答夫의 전권專權 (혼자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름) 차대왕次大王의 20년 전제專制 (국가의 권력을 개인이 장악하고 그 개인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함) 차대왕이 양위를 받아 20년 동안 고구려에 군림하여 전제하다가 연나(椽那)의 조의(皀衣) 명림답부(明臨答夫)에게 살해당하였다. 그러나 차대왕의 본기(本紀)가 간략하고 허술하여, 그 전제(專制)의 정도와 살해당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 이에 본기의 전문을 여기에 번역해 싣고 나서 논평하고자 한다. "차대왕의 이름은 수성(遂成)이니, 태조왕의 동모제(同母弟 : 동모제 3字는 서자로 고칠 것)로 용감하고 위엄이 있었으나, 인자(仁慈)가 적었다. 태조왕의 양위(讓位)로 왕위에 오르니, 나이 76세였다. (출처 :..

동아시아 역사 2017.05.27

단재의 만주족, 몽고, 터키에 대한 인식 (조선상고사 4장)

제 4장 사료의 수집과 선택 만일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여야 하겠느냐 하면, 그 대답이 매우 곤란하나, 우선 나의 경과부터 말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16년 전에 국치(國恥 : 국권침탈, 을사늑약을 말함)에 분발하여 비로소 동국통감(東國通鑑)을 읽으면서 사평체(史評體)에 가까운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지어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지상에 발표하고, 이어서 수십 학생들의 청구 때문에 지나식(支那式)의 연의(連義)를 본받은 역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대동사천년사(大東史千年史)란 것을 짓다가, 두 가지 다 사고로 인하여 중지하고 말았었다. 그 논평의 독단(獨斷)임과 행동의 대담 하였음을 지금까지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니와, 그 이후 얼마만큼 분발하여 힘쓴 적도 없지 아니하나..

동아시아 역사 2017.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