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족 2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부생은 오호십육국 전진 초대 황제인 부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애꾸에 성정이 포악했다고 합니다. 저족의 위진남북조 시대 전진秦 황족은 지나칠 정도로 도참을 신봉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부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도참인 오양삼안五羊三眼(양 세 마리에 눈 다섯 개)을 따라 애꾸눈인 부생을 태자로 삼습니다. 아래는 삼국지 다음 이야기 1권 381p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부생에 대한 위진남북조 북위의 은사 조일趙逸의 언급이 실려 있다. 낙양가람기는 북위 때 기성 태수 양현지楊衒之가 낙양의 사찰에 관한 전설과 고적 등을 기록해 놓은 문집이다. 조일의 언급은 진서秦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부생은 용맹하고 술을 좋아했으나 어질..

동아시아 역사 2016.11.15

이상주의자 전진 부견의 실패 [현실을 망각한 저족의 영웅]

이상주의자 전진 부견의 실패 [현실을 망각한 저족의 영웅] 위진남북조 시대는 두 가지 정치, 사회의 흐름이 주도한 시대였다. 귀족주의와 종족주의가 그것이다. 학계에서는 이 시대를 귀족사회, 혹은 민족 모순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부견은 당시 사회의 흐름을 완전히 거부했다. 부견은 종실 제왕의 작위부터 강등했다. 왕王을 공公으로 하고, 왕호를 모두 공호로 내렸다. 당연히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한 법치주의자였다. 통상 법치는 나쁜 것으로 예치 혹은 덕치의 반대 개념으로 파악되지만, 법치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는 나라가 안정된 시기에는 예치가, 천하가 혼란스러울 때는 법치가 당연하다 생각했다. 문제는 법 적용의 공평, 타당성인데, 부견은 정말 자기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동아시아 역사 2016.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