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4

이순신은 정말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았을까?

출처 - 불멸의 영웅 이순신, 이우각 성웅 이순신은 죽었나 살았나 분명히 전사했다는 데도 두고, 두고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나왔다. 심지어 이런 괴소문까지 등장했다. "자신을 천거한 류성룡柳成龍을 살리고 영웅에게 따르게 마련인 화를 미리 피하고자, 일부러 갑옷도 입지 않고 비 오듯 쏟아지는 조총 탄환에 자신을 노출해 자살 아닌 자살을 감행했다." 세상 사람들의 추측과 입소문은 언제나 현실 이외에 또 하나의 가공적인 현실을 만들어 놓곤 했다. (출처 : 朝鲜文李舜臣将军) (출처 : 朝鲜文李舜臣将军) 이순신의 전사장면을 놓고 "직접 들었다", "직접 보았다", "보고받았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몇 갈래로 이어져 왔다. 우선 조카 이분李芬이 기록한 이순신 행장(죽은 이의 일생을 기록한 글)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2017.05.10

부산포해전1 다대포. 1592년 8월 28, 29일 [임진왜란 이순신 전쟁]

부산포해전1 다대포. 1592년 8월 28, 29일 [임진왜란 이순신 전쟁] 8월 28일, 경상도 육군 탐색군이 와서 말하기를, "고성, 진해, 창원 병영 등지에 진을 치고 있는 왜적이 이달 24, 5일 밤중에 전부 도망했다고 합니다.그것은 분명히 산에 올라 망보던 적들이 우리 수군을 보고, 위세에 놀라 배가 정박하고 있는 곳으로 도망한 것입니다."(1592년 임진왜란, 부산포 해전의 전조) 하였다. 이날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곧장 양산 김해 두 강으로 향하는데, 구곡포仇谷浦 포작(어부, 어민) 정말석이라는 사람이 왔다. 그가 포로 되었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 김해강에서 도망해 와서 말하기를, "김해강에 정박해 있는 적선이 며칠 동안에 떼를 지어 몰운대 바깥 바다로 급히 노를 저어 나가는 것으로 보아 도망..

동아시아 역사 2016.10.14

1592년 고성 당항포해전 [방답첨사 이순신의 공적, 당포파왜병장]

1592년 고성 당항포해전 [방답첨사 이순신의 공적] 1592년 6월 초6일, 방답첨사 이순신이, 당항포에서 산으로 올라간 적들은 남겨두었던 배를 타고 틀림없이 새벽녘에 몰래 나올 것이라 했다. 그는 그가 통솔하는 배를 거느리고 새벽에 바다 어귀로 나가 기다렸다가 나오는 왜선을 모조리 잡아 놓고 얼른 보고하였다. (출처 : 팬저의 국방여행, 이글루스) "오늘 새벽녘(1592년 6월 5일)에 당항포 어귀에 도착해 기다리니, 과연 조금 있다가 왜선 한 척이 바다 어귀로 나왔습니다. 재빨리 돌격하였는데 그 배에 타고 있는 놈은 거의 1백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우리 편 배에서 먼저 현자총통을 쏘는 한편 장편전, 철환, 질여포蒺藜砲, 대발화大發火 등을 잇달아 쏘고 던졌습니다. 그러자 왜적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도..

동아시아 역사 2016.10.13

이순신 명량대첩 - 난중일기 1597년 기록

이순신 명량대첩 - 난중일기 1597년 기록 1597년 9월 일기 초1일 : 맑다. 벽파진에 머물렀다. 초2일 : 맑다. 새벽에 배설이 도망갔다. ※ 1599년 3월 6일 도원수 권율에게 붙잡혀 한양에서 사형 ※ 나무위키 배설 초4일 : 아침에는 날씨가 맑더니 저녁이 되자 비가 뿌렸다. 뜸 아래 머리를 웅크리고 있으니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밤에는 북풍이 불었다. 초4일 : 날씨가 맑았으나 북풍이 크게 불어서 배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 온전하게 지키느라고 애를 먹었다. 초5일 : 맑다. 북풍이 크게 불었다. 각 배를 서로 보호하기 어려웠다. 초6일 : 맑다. 바람이 조금 가라앉았으나, 추위가 스며들어서 사람을 괴롭히니, 사공들이 매우 걱정스러웠다. 초7일 : 맑다. 바람이 그치기 시작하였다. 망을 보는 일을..

동아시아 역사 2016.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