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인물로 보는 고려사, 송은명 그러나 여진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듬해인 예종 3년(1108) 1월, 윤관은 오연총과 함께 정병 8천 명을 이끌고 가한촌 좁은 길을 지나다가 매복해 있던 여진족의 기습을 받았다. 미처 손 쓸 겨를도 없이 윤관을 비롯한 고려군은 포위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연총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윤관이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병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척준경이 순식간에 여진족 10여 명을 해치웠다. 곧이어 최홍정과 이관직이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고, 윤관은 이들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해 영주성으로 돌아올 수 있다. 윤관이 영주성에 머물고 있을 때 여진족 2만 명이 또다시 공격해 왔다. 이때 윤관은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어서 도저히 대적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