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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협 2

한나라 유협 곽해가 민심을 얻은 배경

출처 - 한 권으로 읽는 중국 고전, 이우각, 동양고전연구모임 의협심이 많은 협객의 민심 끌기 사기에는 유협열전游俠列傳이라는 부분이 있다. 당시를 대표하는 유협, 즉 협객들의 언동이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다. 원래 정사에는 여러 인간 군상이 등장하지만, 역시 깡패 두목에게 한 부분을 할애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사마천이라는 역사가는 협객들의 삶에 상당한 공감을 가졌던 것 같다. (출처 : 郭解) 사마천과 동시대에 곽해郭解라는 거물급 두목이 있었다. 사마천은 이 곽해의 인상을 다음처럼 기술하고 있다. "나는 곽해를 본 적이 있다. 그 풍모는 평균 이하였고, 말투 또한 이렇다 하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도 그의 평판은 대단한 것이었다. 상당한 인물이라면 또한 안면이 있든 없..

동아시아 역사 2017.04.23

[삼국지] 동탁은 황제가 되려했을까? 한나라 헌제를 폐위한 필연성

[삼국지] 동탁은 황제가 되려했을까? 한나라 헌제를 폐위한 필연성 현 황제에 대한 태도는 동탁이 가장 난폭했는데, 그는 황제를 폐위했습니다. 동탁은 도성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황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제기합니다. 이유는 그 자신의 말에 따르자면, 소제 유변이 우매하고 유약한 반면 진류왕 유협은 성주聖主의 자질(요 임금의 초상화와 닮은 외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삼국지 동탁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전략이나 한나라 헌제가 등에 따르면, 동탁이 도성에 들어왔을 때 낙양은 이미 크게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대장군 하진이 환관들에 의해 피살당하고, 14세의 소제 유변과 그 동생인 9세의 진류왕 유협(후에 한나라 헌제)은 민간에서 떠돌다가 천신만고 끝에 도성으로 ..

동아시아 역사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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