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휘지 2

유의경의 세설신어 해제解題 - 2, 안길환, 명문당

세설신어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후한말부터 위진에 걸친 동안, 그 시대 사람들의 언행을 모아놓은 책인데 그 배경이 되는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후한 왕조가 붕괴의 조짐을 보였을 때 환관의 전횡에 반항하여 일어난 기개의 선비들은 자신들을 청류淸流로 보고 크게 정치 언론을 폈다. 이것을 청의淸議라고 한다. 조조가 권력을 휘두르게 되자 그는 강력하게 언론을 압박했고, 명제에 이르러서는 특히 강하게 언론 탄압을 하였다. 이때 정치적 권력을 백안시하고, 권력자들이 방패로 삼는 유교적 예교를 도외시하면서 자유정신을 찾던 귀족들은 오히려 정치에서 떠나 철학적 담론에 탐닉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청담淸談이었다.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청담은 이렇게 해서 문제의 황초 연간, 그리고 이어서 명제의 태화, 청룡 연간에 일..

동아시아 역사 2017.01.30

제갈량 닮았다는 뜻이 칭찬인가 비난인가 [치초의 아버지 치음]

치사공郗司空(치음郗愔, 환온의 측근인 치초의 아버지)이 북부北府(서주자사)로 임명받았을 때, 왕황문王黃門(왕휘지王徽之)이 치사공의 집에 와서 축하를 하며 말했다. 임기응변의 장재將才(장수의 자질)가 이 사람의 특징은 아니라오. 왕황문은 몇 차례나 반복하며 뇌깔였다. 치창郗倉(치융郗融)은 형인 가빈(嘉賓, 치초의 자)에게 말했다. 아버님께서 오늘 임명되셨는데 자유子猷(왕휘지)의 말은 실로 불손하군요.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가빈이 말했다. 그것은 진수陳壽가 제갈량諸葛亮을 비평했던 말이다. 남이 네 부친을 무후武侯(제갈량)에 비유하고 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촉지蜀志의 진수陳壽의 평에 이런 말이 있다. 제갈량은 해마다 군사를 움직였는데 공을 세우지 못하였다. 임기응변의 장재將才는 그가 득의得意(일..

동아시아 역사 201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