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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도 2

영화 속에서 묘사된 조조의 신도시 업도 [조조, 황제의 반란 속]

이전 포스트를 통해 조조의 업도에 대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서울 인근 대도시에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서울을 하나 더 만든 셈입니다. 그만큼 조조는 이 업도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고, 3세기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조조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로 업도(업성)가 꼽히기도 합니다. [조조가 아꼈던 업도가 옥수수밭에 묻히다 [클릭]][업도를 중국의 중심으로 만들었던 조조 [동작대 빙정대 금호대 3대] [클릭]] 업성의 가장 큰 특징은 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삼대三臺입니다. 동작대銅雀臺를 가운데 두고 북의 빙정대冰井臺와 남의 금호대金虎臺가 그것이죠. 삼국시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업도의 삼대를 묘사한 적은 없었는데, 조조 황제의 반란이란 영화에서도 딱히 표현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업도 자체..

동아시아 역사 2016.12.17

수문제가 아끼던 조조의 업도를 불태우다 (삼국지 업성)

수문제가 아끼던 조조의 업도를 불태우다 (삼국지 업성) 조조 이후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370여 년간이나 영화를 누렸던 업도는 수문제 때문에 옥수수밭에 묻혀있게 되었다. 조조의 업도가 훼손된 것은 그곳을 근거지로 한 실력자가 패배했기 때문이다. 수나라가 건국할 즈음인 580년 업도는 당시 실력자인 양견(수문제)의 지시로 불태워짐으로써 도시의 지위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양견의 찬탈을 반대하던 상주총관 울지행이 이곳을 근거지로 해서 군사를 일으켰으나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승리자 양견은 조조가 세웠던 업성을 불태우고 그곳 주민들을 남쪽 안양으로 옮기라고 명령하였다. (수문제 이전 시대) 서방의 북주와 화북 통일을 다투던 북제가 망한 것이 577년이었으니 바로 3년 후의 일이다..

동아시아 역사 20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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