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 5

삼한 시대와 중국 위진남북조 (백제, 신라, 가야)

삼한 시대와 중국 위진남북조 (백제, 신라, 가야) 삼한三韓 시대이상에서 기술한 (위진남북조 시대 고구려[링크]) 고구려의 국가 형성은 한반도 남부, 나아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삼국지 동이전 기사에 의하면, 3세기의 한반도 남부는 마한, 진한, 변한의 세 국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서부에 위치한 마한 안에서만 소국 50여 개가 분립해 있었다고 한다. 삼한 시대에 그 소국의 하나로서 백제국伯濟國이 있었는데, 이것이 마한 내부의 여러 나라를 연합, 통일하는 중핵이 되었던 듯하고, 그러한 이유로 마한통일체가 백제百濟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찍이 국가형성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고구려는 남쪽으로의 공격 방향을 주로 이 백제연합체로 겨누었다. 369년 마침내 고구려는 백제와 전투를 벌이게 된..

동아시아 역사 2018.01.03

삼한 속의 변한과 전근대의 인식

한韓 또는 삼한三韓이라는 이름은 종족 혹은 지역 명칭으로서 늦어도 3세기 무렵에 이미 중국에 알려져 있었다. 중국에서 3세기 전반기에 편찬된 사승의 후한서, 3세기 말엽에 편찬된 진수의 삼국지 등이 대표적인 기록이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조선후 준이 예전에 함부로 왕이라 일컫다가 연에서 망명한 위만에게 공격받아 빼앗기자 가까운 나인宮人들을 거느리고 바다로 달아나서 한韓 땅에 살며 스스로 한왕韓王이라고 하였는데, 그 자손이 끊어졌으나 지금도 한인韓人은 그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이에 고조선에서 위만이 준왕을 내쫓고 즉위한 해가 기원전 194년이므로 기원전 2세기 초에는 한반도 남부지역에 한이 성립하였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다. 한은 대..

동아시아 역사 2017.08.08

우리민족 2~3세기 여러 나라들과 삼한

2~3세기의 여러 나라 2~3세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는 여러 나라가 있었습니다. 가장 북쪽에는 부여, 압록강 유역에는 고구려가 이미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한강 유역과 서쪽 바다 근처 평야 지대에는 마한, 남쪽 바다 근처에는 변한, 동쪽 바다 근처 산간지역에는 진한이 있었는데, 모두 합해 삼한이라고 부릅니다. 삼한은 지금 시와 군 크기와 비슷한 작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밖에 한반도 동해안의 북쪽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가 있었습니다. 삼한, 옥저, 동예 등은 절대적 권력을 지닌 왕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행정, 세금, 군대 등의 제도를 잘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여러 나라는 서로 경쟁하면서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삼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옛 기록을 ..

동아시아 역사 2017.07.08

환단고기 계보 2 - 단군조선, 왕검에서 솔나까지

☆ 단군조선 단군 계보47대, 존속연도 : 2096년 1. 왕검王儉 - 93 - B.C.2333이에 천하의 땅을 새로 갈라서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니, 삼한은 모두 오가五加 64족을 포함하였다. 2. 부루扶婁 - 58 - B.C.2240단제께서는 어질면서 다복하셔서 재물을 저장하니 크게 풍부하였으며, 백성과 더불어 함께 산업을 다스리시니 한 사람도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자가 없었다. 봄, 가을로 나라안을 두루 살펴보시고는 하늘에 제를 올려 예를 다하였다. 여러 왕들의 잘잘못을 살피시고 상벌을 신중히 하였으며 도량을 파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며 농사짓고 뽕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하였다. 또 기숙사察를 설치하여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는 크게 진보하여 그 명성이 날로 떨쳐졌다. 3. 가륵嘉勒 - 45 - ..

동아시아 역사 2017.01.13

위진남북조 시대 동아시아 고구려 (화북 국가와 충돌)

위진남북조 시대 동아시아 고구려 (화북 국가와 충돌) 고구려高句麗위진남북조 시대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국가형성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고구려이다. 이는 1세기부터 2세기 동안 요동에서 한반도 북부에 걸쳐 설치된 요동군, 현도군 등 한제국의 파견기관과 직접 접촉하면서 투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2세기 후반부터 3세기에 걸쳐 요동에서 반쯤 독립한 한인인 공손씨 세력과 화북을 제압한 위나라와의 접촉, 투쟁에서도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238년 위나라(위진남북조의 위를 말함)에 멸망한 공손씨의 반독립국에는 184년 황건의 대란으로 시작된 화북의 혼란을 피해 많은 한민족이 유입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당시의 일류 지식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도의 중국 문명이 요동지방에 현실적으로 뿌리를 내..

동아시아 역사 2016.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