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람들이 모여서 진 무제晉 武帝(司馬炎, 사마염)가 제왕齊王(사마염의 친동생 사마유司馬攸)을 밖으로 내보낸 것과 혜제惠帝(사마충, 司馬衷)를 세운 것은 어느 쪽이 더 심한 실책이었는지를 논했다. (1) 대부분 사람은 혜제를 세운 것이 더 중대한 실책이었다고 했는데 환온은 말했다. "그렇지 않소. 아들에게 부업父業을 잇도록 하고, 동생에게 집안의 제사를 받들게 한 것인데, 그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오?" (2)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유효표의 주. (1) 진양추晉陽秋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왕 사마유의 자는 대유大猷이며 문제(사마의의 둘째 아들 사마소)의 둘째 아들이다. 효경孝敬 충성스럽고, 청아-공평했으며, 현인賢人에게 친절히 대하고 선비에게 겸양하며, 어질고 은혜로워 베풀기를 좋아했다.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