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소 5

극성스런 제갈량의 북벌 - 국가의 안보를 위한 몸부림

출처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삼국지의 영웅호걸, 이우각 제갈량의 북벌은 극성스럽다. 마치 '전쟁에 미친' 전쟁광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라의 안보를 더욱 튼튼히 하려는 당연한 몸부림이었다.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지 않으면 '대문이 없는 집'이나 '담장이 무너진 집'이라는 측면에서 기를 쓰고 기산(후난성 남부)을 차지하려 들었다. 앞에는 위수가 있고 뒤에는 사곡이 있었다. 해발 779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백 리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곱돌(활석)과 대리석이 많은 데다 삼림자원 또한 풍부한 알짜배기 산이다. 제갈량은 기산의 자원 때문이 아니라, '촉으로 향하는 중요한 대문이고 담장'이라서 기어이 차지하려 하고 지키려 했다. 그 대신 낙양(허난성 북서부)에 도읍지를 정한 위나라는..

동아시아 역사 2017.05.09

삼국시대 현명했던 여인 신헌영 [신비의 딸이자 양호의 고모]

신창辛敞은 자가 태옹泰雍이고 관직은 위위衛尉에 이르렀다. 신비辛毗의 딸 신헌영辛憲英은 태상太常인 태산泰山 사람 양탐羊耽에게 시집갔는데, 외손자 하후담夏侯湛이 그녀의 전傳을 지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헌영은 총명하고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다." 예전에 문제文帝(조비)가 진사왕陳思王(조식)과 태자 자리를 놓고 다투었는데, 나중에 문제가 태자로 책봉되자 신비의 목을 끌어안고 기뻐하며 말했다. "신군辛君(신비)은 내가 얼마나 기쁜지 아시오?" 신비가 그 일을 신헌영에게 일러주었더니, 신헌영이 탄식하며 말했다. "태자는 군왕을 대신해 종묘와 사직을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군왕을 대신하면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고, 나랏일을 주관하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마땅히 근심해야 하는데도 기뻐했으니 어떻게 오래 갈 ..

동아시아 역사 2017.01.09

미움을 받고 목숨을 잃은 하후현 [사마소 형제와 종회 형제의 원한]

하후현夏侯玄이 붙잡혔을 때, (1) 종육鍾毓은 정위廷尉였다. 종회鍾會(종육의 동생)는 그때까지 하후현과 면식이 없었으므로 함부로 행동을 취했다. 하후현이 말했다. "비록 죄수의 몸이라 하더라도 결코 당신의 말에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2) 고문을 당했지만, 처음부터 한마디도 말하지 않은 채 동시東市에서 처형당할 때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3) 유효표의 주. (1) 위씨춘추魏氏春秋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후현이 자는 태초太初이고 초국譙國 사람이다. 하후상의 아들이며 대장군(사마사)의 전처 오빠이다. 사람 됨됨이는 고명했으며 언변이 뛰어났고 박학했다. 정시 연간에 호군이 되었다. 조상이 주살 당한 후에 태상으로 초청되었다. 마음속으로 화를 면치 못할 것을 알고는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았으며 기록..

동아시아 역사 2017.01.04

죽림칠현 혜강은 어떤 사람일까? (루쉰, 혜강집, 진서 참조)

죽림칠현 혜강은 어떤 사람일까? (루쉰, 혜강집, 진서 참조) 근대 문학가 루쉰의 혜강과 완적에 대한 평성깔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완적은 노년에 이르러 성격이 많이 좋아졌지만 죽림칠현 혜강은 끝까지 독하디독한 성품을 버리지 않았다. 완적은 후에 '남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지만 혜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완적은 천수를 누렸고, 죽림칠현 혜강은 사마씨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약을 먹는 것과 술을 마시는 것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약을 먹으면 신선이 되어 세속의 사람들을 멸시하게 되지만, 술을 마시면 신선이 될 수 없으므로 적당히 넘어가게 된다. 루쉰의 혜강집 중완적의 문장과 시문은 모두 훌륭하다. 그의 시에는 격정과 비분강개의 정서가 녹아 있지만 많은 표현..

동아시아 역사 2016.12.01

사마소가 놀리던 삼국지 등애의 말더듬 버릇

사마소가 놀리던 삼국지 등애의 말더듬 버릇 등애鄧艾는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이야기하려고 하면, "애......애......" 라고 했다. (1) 진晉 문왕文王(사마소)이 그것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애......애......'라고 하는데 누가 애라는 것이오?" 등애가 사마소에게 대답했다. "봉鳳아 봉아라고 말합니다만 결국 봉은 한 마리입니다." (2) 유효표의 주. (1) 위지魏志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등애의 자는 사재士載이며 극양棘陽 사람이다. 어렸을 때 전농도위典農都尉 밑에서 송아지를 사육했었다. 12세 때 어머니를 따라 영천潁川에 갔는데 옛날 태구장太丘長이었던 진식陳寔의 비문을 읽었다. 그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는 말은 세상의 모범이요, 하는 행동은 선비의 준칙이었다." 그래..

동아시아 역사 2016.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