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4

혜경궁 홍씨, 남편 사도세자와 아들 정조 (수원 화성 행궁)

혜경궁 홍씨, 남편 사도세자와 아들 정조 (수원 화성 행궁) 33년 만의 재회, 혜경궁 홍씨의 현륭원 참배조선 정조는 수원행차의 첫 행사로 현륭원(사도세자 무덤) 참배를 계획했으나 장거리 여행으로 지쳐있는 혜경궁 홍씨를 위하여 하루 뒤로 미루었다. 수원에 도착한 이튿날(윤2월 11일) 새벽,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가 계시는 현륭원으로 향했다. 정조의 누이동생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 역시 뒤따랐다. 남편을 떠나보낸 지 33년 만에 무덤을 찾은 혜경궁 홍씨는 그동안 가슴에 담아 두었던 설움을 이기지 못해 통곡하였다. 철의 여인, 혜경궁 홍씨혜경궁 홍씨(1735~1815)는 1735년(영조 11) 6월 도성의 서대문 밖 평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아버지 홍봉한洪鳳漢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

동아시아 역사 2017.10.30

정조 수원화성과 사도세자, 현륭원과 사도세자 유품들 (장헌세자)

정조 수원화성과 사도세자, 현륭원과 사도세자 유품들 (장헌세자) 정조가 공을 들여 조성한 수원화성 인근엔 사도세자의 흔적이 많습니다. 자연스레 만들어지진 않고 아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여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인데요. 대표적으로 현륭원과 용주사가 있습니다. 용주사엔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이 있는데, 여기엔 부모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있죠. 이제 소개할 아래 사진들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직접 찍었습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기 영조 - 장조(사도세자) - 정조의 시대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 불리는 영조-장조(사도세자)-정조의 시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모두 안정되고 크게 발전하여, 마치 청淸의 황금기라 불리는 강희제-옹정제-건륭제의 시대와 비견할 만하다. 정조는 왕위에..

동아시아 역사 2017.10.18

조선 문종8. 세자 섭정을 허락한 세종 (1442년)

"조선 문종8.세자 섭정을 허락한 세종 (1442년)" 1442년. 세종은 자신을 대신해 스물아홉 세자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할 뜻을 밝힌다. 1442년 세종실록 "세자로 하여금 서무를 처결하게 하고자 한다." "동궁에 세자가 사무를 처리하는 관원을 두게 하라" 갑작스러운 왕의 결정에 대신들은 강력하게 반발한다. 하지만,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왕의 강력한 왕의 의지에 반대하던 대신들도 세자의 섭정을 받아들인다.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세자 섭정. 세종은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조선 시대 세자 섭정은 일반적이었나? 일반적인 일은 아닙니다. 대리청정이라고 해서 공부하는 세자에게 간접적인 국가 경영을 맡아보게 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왕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죠. ..

동아시아 역사 2017.06.03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6위 - 조선 정조의 죽음

출처 - 기억나질 않음 1.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6위 역사상에서 안타까운 일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정말 안타깝고, 뒤돌아봐서도 안타까운 일을 6가지로 간추려 보았다. 그중에서 6위는 조선 22대 왕 정조의 죽음이다. 정조는 영조의 서차남 사도세자(장조, 장헌세자)의 차남이며, 혜경궁 홍씨의 소생이다. 사도세자의 장남 의소세자는 어린 나이에 죽어, 1759년 왕세손으로 책봉되었다. 1762년 사도세자가 죽자 횡사한 영조의 서장자 효장세자에게 입적되어 왕세손이 되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연시한 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한 의지를 보인 영조와 동궁 시절에 전례(사도세자의 죽음)를 밟지 않는 얌전한 처세로 왕위에 즉위한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말과 함께 즉위한 정조는 조정에 일대 개혁..

동아시아 역사 2017.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