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연 3

광개토대왕의 왜구 격퇴, 선비 정복 - 조선상고사

광개토대왕의 왜구倭寇 격퇴 왜(倭)는 일본의 본이름이니, 지금 일본이 왜와 일본을 구분하여 왜는 북해도(北海道)의 아이누 족이요, 일본은 대화족(大和族)이라 한다. 그러나 일본음에 화(和)ㆍ(倭)가 같으니 일본이 곧 왜임이 분명한데 저들이 근세에 와서 조선사나 지나사에 쓰인 ‘왜’가 너무 문화 없는 흉포한 야만족임을 부끄럽게 여겨 드디어 화(和)란 명사를 지어냈다. (출처 : 吉林旅行豆腐账之——集安) 백제 건국 이후까지도 왜가 어리석고 무지하여, 일본삼도(日本三島 : 일본의 국토를 이룬 세 섬, 곧 규슈本州ㆍ시코쿠四國ㆍ규주九州)에서 고기 잡고 사냥으로 생활할 뿐 아무런 문화가 없었는데, 백제의 고이왕(古爾王)이 그들을 가르쳐 인도해서 봉직(縫織)과 농작(農作)과 그 밖의 백공(百工)의 기예를 가르치고 박..

동아시아 역사 2017.04.11

환단고기 계보 8 - 고구려 황제 [28대 보장왕까지 모든 일람]

☆ 고구려 황제 계보 28대, 존속 연도 : 726년 1. 고주몽高朱蒙 - 39 - B.C.58불리지弗離支는 일찍이 서쪽 압록강변을 지나다가 하백녀河伯女 유화宥和를 만나 그녀를 맞아들여 고주몽高朱蒙을 낳게 하였다. 때는 곧 임인년(B.C.79) 5월 5일이라. 곧 한나라왕 불능의 원봉 2년이다. 불리지가 죽으니 유화는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熊心山으로 돌아왔으니 지금의 서란이다. 주몽이 성장하여 사방을 주유하다가 가섭원迦葉原을 택하여 거기서 살다가 관가에 뽑혀 말 지기로 임명되었다. 얼마 안 되어 관가의 미움을 사서 오이와 마리외 협보와 함께 도망하여 졸본卒本으로 왔다. 때마침 부여 왕은 후사가 없었다. 주몽이 마침내 사위가 되어서 대통을 이으니 이를 고구려의 시조라 한다. 32년 갑오년(B.C.27)..

동아시아 역사 2017.01.19

중국 화북 지방, 위진남북조 전진 멸망 이후 흥망사

중국 화북 지방, 위진남북조 전진 멸망 이후 흥망사 중국 화북 지방, 동부의 흥망화북 동반부의 옛 전영 영내에서는 384년 모용수가 연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 이윽고 중산中山(하북성 정현)을 수도로 삼고 제위에 올랐다. 이를 전연과 구별하여 후연이라고 한다. 또 모용수(전진 부견에게 중용)의 독립을 계기로 하여 옛 전연의 황제 모용위의 동생들이 장안의 동쪽과 산서성 남부에서 병사를 일으켰고, 이에 호응하고자 한 모용위가 부견에게 살해당한 뒤 동생 가운데 한 명인 모용충이 황제를 칭하였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이 세력은 서연西燕이라 한다. 중국 화북 지방의 서연은 부견으로부터 수도 장안을 빼앗았으나 관중으로 강제 이주되어 있던 선비족이 그 세력의 주체였고 그들은 동쪽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장안을 ..

동아시아 역사 2016.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