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4

송태종 조광의 -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다

출처 - 용호상박의 명장들, 장개충 송태종宋太宗 조광의趙光義 -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다 976년 10월 송나라 태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조광의(이후 조경炅으로 개명)가 제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태종이다. 당시는 북송이 건국된 지 17년밖에 안 되었기에 모든 면에서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오대 때에 형성된 할거체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송의 동남지역은 전류錢鏐가 오월吳越에서 칭제하고 있었고, 진홍陈洪은 장천漳泉을 점거하였으며, 서북 지역은 북한北漢이 태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출처 : 赵光义) 북송이 단지 후주의 뒤를 이어 여섯 번째 단명 왕조가 될 것인가 여부가 북송 통치자 앞에 놓여 있었다. 송 태종은 '국가 창업에 노력하고, 정치에 열중하여 천하의 정무에 게으름 없이 몸소 임했던' 태..

동아시아 역사 2017.07.20

그림 속 백제 사신의 모습 (양직공도)

양직공도梁職貢圖는 6세기 중국 양나라를 찾은 백제, 왜 등 외국 사신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나라의 역사와 풍속을 기록한 화첩이다. 지금 남아 있는 그림은 양나라 원제元帝(재위 552~554) 소역이 왕자 시절인 539년에 제작한 원본을 1077년 북송 시대에 모사한 것이다. 백제국사百濟國使로 기재된 그림 속 백제 사신의 모습은 가늘고 길게 째진 눈매에 낮고 넓은 콧방울, 작지만 붉은 입술, 오동통한 볼이 특징이다. 머리에 흰색 관을 쓰고 두루마기와 바지를 입었으며, 검은색 가죽신을 신었다. 백제 사신 그림 옆에는 백제의 유래와 도성, 제도, 풍속 등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이 백제 사신 그림은 백제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을 담은 유일한 자료이다. 타이완臺灣 국립고궁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에 소장된 남당고덕겸모..

동아시아 역사 2017.06.04

북송 말기 고려와 요나라의 상황 (관계)

정삭 正朔 정삭正朔 본래 정월正月과 삭일朔日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그것으로 책력을 뜻하게 되었고, 나아가 고대 중국에서는 제왕이 창업하면 어느 달을 정월로 하느냐를 결정하는 세수歲首의 개정이 있었고, 그것에 따라 신력新曆를 반포하여 국민은 그것을 지켜 제반사를 집행했다. 그래서 봉정삭奉正朔, 즉 정삭을 받든다고 하는 것은 곧 신복臣服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년 원단에는 신력을 반포하고 복속 국가에서는 사신을 보내어 그것을 받아오는 것으로 신복함을 표시하였다. 고려는 당시 북송의 정삭을 받들지 않고 있었다. 당唐 유인궤劉仁軌(당고종唐高宗 때 삼한 공략에 전과를 올렸고, 그가 처음 말한 대로, 고종이 태산을 봉할 때 삼한과 일본의 대표자들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후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지정사知政事에..

동아시아 역사 2017.05.24

이청조란 송나라 여류 문인을 평가하는 글

이청조에 대하여 - 중국 제일의 여류 문인 이청조(李淸照) (전순동, 충복대 교수) [클릭] 문학과 예술을 즐기던 집안에서 태어난 송宋(조광윤의 송) 나라 시기의 여류 문인입니다. 아버지 이격비李格非는 제남济南 역하历下 태생으로 진사进士 출신의 소식苏轼(소동파)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관직은 예부礼部의 원외랑員外郎까지 오릅니다. 1. 어느 비평문에서, 개원開元(당 현종의 연호), 천보天寶 연간에 이팔랑李八郞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노래를 잘 부르기로 천하에 따라갈 자가 없었다. 당시 새로 진사에 급제한 사람들이 곡강曲江에 연회를 마련했는데, 진사에 급제한 한 명사名士가 이팔랑을 따로 부르더니 그에게 옷을 갈아입게 하고 이름을 숨기게 했다. 이팔랑은 매우 비루한 옷을 입고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그와 함께 연..

동아시아 역사 2017.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