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는 참패의 원인을 '불관기상不觀氣像'과 '난오중군지졸'에 돌리고 있다. 백제왕과 일본 군장 모두에게 공동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극심한 백촌강 입구의 형세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세도 제대로 못 읽은 채 오합지졸로 정예병으로 구성된 나당연합군에 맞섰으니 패배는 명약관화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백제 의병들은 "주유성도 무너졌다. 백제라는 이름도 오늘로써 다했으니 어떻게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며 일본 망명을 결심했다. 9월 11일 모궁牟弓을 출발하여 13일 궁례弓禮에 이른 뒤 침복기성枕服岐城(시무부쿠기사시)에 있는 처자들의 도착을 기다렸다가 663년 9월 24일 마침내 일본으로 향했다고 일본서기 '천지기天智紀'에 기록되어 있다. 좌평 여자신, 달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