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견 6

동진 효무제에게 중용된 전량 황제 장천석

장천석張天錫은 양주자사凉州刺史가 되어, 서쪽 땅에서 왕王을 참칭하고 세력을 폈는데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에게 붙잡혔고 그의 시중侍中으로 기용되었다. 그 후 수양壽陽에서 함께 패전(비수에서 패배한 일)했는데 장천석은 도읍으로 돌아왔다. (1) 효무제(동진 효무제 사마요)에게 중용되었는데 궁중에 입궐할 때마다 언제나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 상대를 하고 있었다. 이 일을 질투하는 자가 있었는데 어느 좌석에서 장천석에게 물었다. "북쪽에는 어떤 좋은 점이 있습니까?" 장천석이 말했다. "오디(뽕나무 열매)는 달고도 향기로워서 올빼미 솔개가 이것을 먹으면 그 날카로운 소리가 부드럽게 바뀌고, (2) 짙은 낙유酪乳는 온호환 성품을 길러주는 까닭에 사람에게는 질투심 같은 것이 없답니다." (3) (출처 : 鲜为人知的两位..

동아시아 역사 2017.01.03

고구려 역대 교역 목록 일람 - 1 [삼국사기 본기, 동명왕에서 장수왕]

※ 연도, (재위 연도), 대상, 물품, 이유 ☆ 동명성왕(東明聖王) BC-24(14) 동부여 - 토산물方物,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자 금와가 태후의 예로 장례 지내고 신묘를 세우자 감사의 뜻으로 보냄. ☆ 유리명왕(瑠璃明王) 6(14) 부여 - 태자 도절都切, 부여왕 대소의 인질 교환을 요청. 그러나 도절이 두려워하여 가지 않음. ☆ 대무신왕(大武神王) 20(3) 부여 - 붉은 까마귀赤烏, 그 까마귀의 머리는 하나이고 몸은 둘이었다. 32(15) 한 - 조공朝貢, 한 나라에 조공하니, 광무제가 왕호를 회복시킴. ☆ 민중왕(閔中王) 47(4) 국내(고주리) - 고래의 눈鯨魚目, 동해 사람 고주리가 바쳤는데 밤에도 빛이 났다 함. ☆ 모본왕(慕本王) ☆ 대조대왕(大祖大王) 77(25) 부여 - 뿔이 세 달린..

동아시아 역사 2017.01.02

거만한 동진 부랑의 일화 [전진 부견의 사촌 형인 부랑]

배경인裴景仁의 진서秦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랑의 자는 원달元達이며 부견苻堅의 사촌 형이다. 성품이 호방했으며 머리가 총명했다. 부견이 늘 말하기를, "우리 가문의 천리마이다." 라고 하였다. 부견이 모용충慕容沖에게 포위당했을 때 부랑은 사현謝玄에게 항복하여 원외산기시랑員外散騎侍郞이 되었다. 이부랑 왕침王忱이 형 왕국보王國寶와 거마를 준비하여 함께 그를 방문했다. (출처 : 一代高僧:竺法汰) 스님 축법태竺法汰가 부랑에게 물었다. "왕침 형제는 만나 보셨습니까?" 부랑이 말했다. "한 사람은 개 얼굴에 사람 마음을 하는 자이고, 또 한 사람은 사람 얼굴에 개 마음을 하는 자가 아닙니까?" (이렇게 말한 것은) 왕침이 못생겼으나 재능이 있었고, 왕국보는 잘생겼으나 마음이 비뚤어졌기 때문이었다. 부랑은 ..

동아시아 역사 2016.12.30

동진 사현을 추천한 치초, 비수대전 부견의 탄생 일화 (위진남북조)

동진 사현을 추천한 치초, 비수대전 부견의 탄생 일화 (위진남북조) 치초郗超와 사현謝玄은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때마침 부견이 동진을 병합코자 했는데 우선 양梁, 기岐의 땅(하남성 남부에서 호북성 북부 일대)을 침범하고, 다시 호시탐탐 회수 남쪽도 노리고 있었다. (비수대전을 일으키기에 앞서 국경 요충지를 먼저 함락함) (1) 당시 조정에서는 사현을 파견하여 북벌시키고자 하는 의견이 많았는데 세상의 논자들 사이에서 찬반양론이 있었다. 그러나 치초 만큼은, "사현은 틀림없이 해낼 것이오. 옛날 나는 그와 함께 환선무桓宣武(선무장군이었던 환온)의 막부에 있었는데 그가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을 보면, 등용한 사람에게는 그 힘을 모두 발휘케 하고, 신분이 아주 낮은 자까지도 등용했었소. 이런 점으로 볼 때 틀림없..

동아시아 역사 2016.11.24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부생은 오호십육국 전진 초대 황제인 부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애꾸에 성정이 포악했다고 합니다. 저족의 위진남북조 시대 전진秦 황족은 지나칠 정도로 도참을 신봉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부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도참인 오양삼안五羊三眼(양 세 마리에 눈 다섯 개)을 따라 애꾸눈인 부생을 태자로 삼습니다. 아래는 삼국지 다음 이야기 1권 381p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부생에 대한 위진남북조 북위의 은사 조일趙逸의 언급이 실려 있다. 낙양가람기는 북위 때 기성 태수 양현지楊衒之가 낙양의 사찰에 관한 전설과 고적 등을 기록해 놓은 문집이다. 조일의 언급은 진서秦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부생은 용맹하고 술을 좋아했으나 어질..

동아시아 역사 2016.11.15

이상주의자 전진 부견의 실패 [현실을 망각한 저족의 영웅]

이상주의자 전진 부견의 실패 [현실을 망각한 저족의 영웅] 위진남북조 시대는 두 가지 정치, 사회의 흐름이 주도한 시대였다. 귀족주의와 종족주의가 그것이다. 학계에서는 이 시대를 귀족사회, 혹은 민족 모순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부견은 당시 사회의 흐름을 완전히 거부했다. 부견은 종실 제왕의 작위부터 강등했다. 왕王을 공公으로 하고, 왕호를 모두 공호로 내렸다. 당연히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한 법치주의자였다. 통상 법치는 나쁜 것으로 예치 혹은 덕치의 반대 개념으로 파악되지만, 법치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는 나라가 안정된 시기에는 예치가, 천하가 혼란스러울 때는 법치가 당연하다 생각했다. 문제는 법 적용의 공평, 타당성인데, 부견은 정말 자기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동아시아 역사 2016.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