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시해 2

을사늑약 1905년. 일본 대학생의 합리화, 분노가 치민다

을사늑약 1905년. 일본 대학생의 합리화, 분노가 치민다 을사늑약에 대한 어느 일본 대학생의 주장입니다. 논리 자체는 일본인으로선 합리적이겠으나,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 입장에선 매우 비합리적이란 생각입니다. 결과만 놓고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는 식의 논리 전개는 그 과정을 매우 깎아내리는 것이죠. 행동에 대한 결과를 논의하기보단, 결과만 놓고 결과가 파생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을사늑약 1905년을 가볍게 봐요.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전체 영상을 보고 싶은데 그건 제 능력으로 어떻게 안 되니, 약 6분의 영상 링크와 거기에 나온 패널들의 발언을 텍스트로 남깁니다. (어느 일본 대학생) 저는 대학에서 역사학과를 나왔는데요. 한국과 일본은 같은 대일본제국의 일원 중 하나였..

동아시아 역사 2016.12.11

명성황후 시해 사건 : 미우라 고로 민비 시해 사건 과정 [매천야록]

명성황후 시해 사건 : 미우라 고로 민비 시해 사건 과정 [매천야록] 조선 말기 황현이 지은 매천야록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 경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인 미우라 고로가 민비 시해 사건을 저질렀는데 이 과정이 상세히 적혀있죠. 아래 글은 서해문고 매천야록을 인용했습니다. 매천야록에 기록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 과정, 미우라 고로가 민비 시해 사건을 저지르는 과정 살펴보시죠. 1. 명성황후 시해 사건 원인 - 명성황후 권력욕1895년 8월 2일[무자]에 왜국 공사 미우라 고로(삼포오루三浦梧楼)가 대궐에 침입했다. 왕후 민씨가 시해되고, 궁내부대신 이경직과 대대장 홍계훈이 적에게 대항하다가 죽었다. 왕후는 오랫동안 정사에 참여하지 못하다가 (왜국 공사)정상형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임금에게 정권을 돌려주도록 ..

동아시아 역사 201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