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획 3

제갈량이 맹획을 제압한 이유, 칠종칠금 원인

제갈량이 맹획을 제압한 이유, 칠종칠금 원인 상편에서 이어지는 포스트 상편 - 칠종칠금, 제갈량의 남방 맹획 정벌과 촉나라의 기초 확립 [링크] 이것은 잘 알다시피 맹획이 독룡동의 동주 타사대왕의 도움을 얻어 제갈량의 군대와 대적할 당시 물을 마시면 벙어리가 되고, 살이 타서 시커멓게 변한 후 썩으며, 몸이 솜처럼 힘이 없어진다는 독천이 있던 곳이란다. 또 곡정을 한때 둔하屯下라고 하였는데, 제갈량이 맹획을 정복하고 이곳에 둔전을 열고 선진 문물을 전파한 곳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곡정 일대가 현재 중국인에게는 칠종칠금의 고사가 얽힌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이 독룡동이라는 곳도 서이하 근방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작가 나관중의 지리 지식은 우리를 매우 혼란스럽게 한다. 삼국지연의에는 많은 ..

동아시아 역사 2017.10.19

삼국연의 속 칠종칠금의 주인공은 누구?

(출처 : laoren) 삼국시대 제갈량은 남방 정벌에 나서 추장 맹획을 7번 잡고 7번 풀어줍니다. 마음속으로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반복된 겁니다. 결국 제갈량은 맹획의 마음을 굴복시킵니다. 삼국지 제갈량전 건흥 3년, 제갈량亮은 남중南中에 이르러 싸우는 곳마다 이겼다. 맹획孟獲이라는 자가 이인(夷人 : 오랑캐)과 한인漢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듣고 그를 생포하도록 했다. 붙잡은 후 진영 안을 관찰하도록 하고 물었다. ‘우리 군이 어떠하오?’ 맹획이 말했다. "이전에는 허실을 몰랐기 때문에 패배했소. 지금 허락을 받아 군영과 병진을 둘러보니 이 정도 라면 쉽게 이기겠소이다." 제갈량이 웃으며 맹획을 풀어주고 다시 싸웠다. 일곱 번 풀어주고 일곱 번 사로잡은 뒤七縱七禽 제갈량이 오히려 맹획을 풀어주었..

동아시아 역사 2017.05.01

칠종칠금, 제갈량의 남방 정벌과 촉나라의 기초 확립

칠종칠금, 제갈량의 남방 정벌과 촉나라의 기초 확립 삼국지연의에 의해 널리 소개된 제갈량의 칠종칠금 고사는 소설 형식으로 각색되어 사실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이 칠종칠금 문제를 다룬 사서로는 정사 삼국지와 동진 시대 상거가 편찬한 화양국지의 남중지南中志, 그리고 당나라 시대 번작이 편찬한 만서蠻書가 전부다. 그러나 이들의 기록은 매우 간단하다. 특히 삼국지에는 후주(유선), 여개, 양흥, 마량, 이회 등의 열전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인구에 회자하는 이 사건을 주도한 제갈량의 열전의 칠종칠금은, "건흥 3년 봄 제갈량이 무리를 이끌고 남정에 나섰고 그해 가을 모두 평정했다. 그곳으로부터 군사자금이 나오게 되어 나라가 부유하게 되었다. 이에 군사를 정비하여 대거大擧(북벌)를 기다렸다." 가 전부다. 227..

동아시아 역사 2016.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