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9성 3

윤관 - 영광을 위해 오랜 시간 인내했던 인물 3

출처 - 인물로 보는 고려사, 송은명 그러나 여진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듬해인 예종 3년(1108) 1월, 윤관은 오연총과 함께 정병 8천 명을 이끌고 가한촌 좁은 길을 지나다가 매복해 있던 여진족의 기습을 받았다. 미처 손 쓸 겨를도 없이 윤관을 비롯한 고려군은 포위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연총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윤관이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병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척준경이 순식간에 여진족 10여 명을 해치웠다. 곧이어 최홍정과 이관직이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고, 윤관은 이들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해 영주성으로 돌아올 수 있다. 윤관이 영주성에 머물고 있을 때 여진족 2만 명이 또다시 공격해 왔다. 이때 윤관은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어서 도저히 대적할 ..

동아시아 역사 2017.04.17

윤관 - 영광을 위해 오랜 시간 인내했던 인물 2

출처 - 인물로 보는 고려사, 송은명 숙종은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그해(1104년) 12월 전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별무반이라는 특수부대를 설치하여 여진 정벌을 위한 만반의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별무반은 기병 중심의 신기군, 보병 중심의 신보군, 승병 중심의 항마군으로 편성되었는데, 말을 가진 사람은 기병인 신기군에 속했고, 보병인 신보군은 20세 이상으로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제외한 말이 없는 사람으로 조직되었다. 항마군은 사원에 예속된 하급 승려들을 징발하여 조직했다. 이듬해 1105년, 윤관이 태자소보 판상서병부사 한림원사에 올라 한창 군사훈련에 열중하고 있을 때, 숙종이 재위 10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숙종은 자신이 강력하게 추진해 왔던 여진 정벌과 남경 천도의 꿈을 이루지 못한..

동아시아 역사 2017.04.16

윤관 - 영광을 위해 오랜 시간 인내했던 인물 1

출처 - 인물로 보는 고려사, 송은명 고려 중기의 문신 윤관은 여진을 정벌하여 9성을 축조한 장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전전하다 숙종의 즉위 사실을 알리기 위해 요나라에 파견되면서부터 신임을 얻어 요직에 발탁되었다. 그 후 여진 정벌에 나섰다가 패한 뒤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하여 동북 지방에 쳐들어와 약탈과 방화를 일삼던 여진을 정벌했다. 그러나 동북 9성을 여진에게 반환하는 과정에서 패장이라는 억울한 모함을 받고 관직과 공신 작호를 빼앗긴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윤관은 무장으로서 잘 알려졌지만,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학자로, "장군이 됨에 이르러 진중에 있으면서도 항상 오경五經을 지니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학문에 열중했던 문신이기도 하다. (..

동아시아 역사 2017.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