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3

무측천의 무주혁명, 측천무후 최고의 업적 (당나라 -> 주나라)

무측천의 무주혁명, 측천무후 최고의 업적 (당나라 -> 주나라) 당나라 홍도 원년(683년)에 고종이 56세로 세상을 뜨면서 태자를 즉위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현(고종과 측천무후 사이의 셋째 아들)은 즉위하여 호를 중종이라 하고, 무측천을 황태후로 존대(무주혁명의 빌미)하였으며 배염을 재상에 임명했다. 한번은 중종이 배염 앞에서 자기의 장인 위현정을 재상으로 추천하자 배염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당나라 중종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하를 전부 위현정에게 준다 해도 큰일 날 것이 없다." 이 말이 무측천의 귀에 들어가자 중종은 황제가 된 지 두 달 남짓 만에 쫓겨나 노릉왕으로 강등되었다. (측천무후는 무주혁명을 위해 권력자들을 이렇게 제거했다) 중종을 폐위한 무측천은 넷째 아들 이단을 황위에 앉혔..

동아시아 역사 2016.11.04

[발해고] 발해, 발해왕의 외교, 교역, 접촉 기록 (당나라, 돌궐, 일본, 요나라)

[발해고] 발해, 발해왕의 외교, 교역, 접촉 기록 (당나라, 돌궐, 일본, 요나라) 발해고에 나온 발해, 발해왕과 외국과의 접촉 기록입니다. ※ 접촉 연도, 접촉 세력, 접촉 이유, 비고 발해왕, 진국공???, 돌궐(突厥): 외교 접선, 세력을 이루었음을 돌궐에 알림 발해왕, 고왕698, 당(唐) : 당의 위문, 아들을 당에 보내 황제를 모시게 함713, 당(唐) : 당의 책봉,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을 받음 발해왕, 무왕719, 당(唐) : 당의 조문726, 흑수말갈 : 말갈에 대한 공격, 동생 문예가 이를 따르지 않고 당으로 도망감 732, 당(唐) : 당에 대한 공격, 문예 사건에 앙심을 품고 그에 대해 복수를 함. 당의 등주자사 위준을 죽임733, 734, 흑수말갈 : 말갈에 대한 공격..

동아시아 역사 2016.10.28

당나라 5왕 정변, 무측천은 황제에서 물러나라!

당나라 5왕 정변, 무측천은 황제에서 물러나라! 무측천은 주나라로 당나라를 대체하자마자 무씨 자제들을 재상과 장군으로 기용했고 공이 있는 신하에게도 무씨 성을 하사했다. 또한, 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세금을 면제해 주고, 무씨 선조를 추봉하고 시호를 짓고 사당을 세웠다. (당나라를 부정하는 의미) 무측천은 자신이 죽은 뒤 황위를 무씨 자손에게 넘기려는 조처였다. 일부 기회주의자들은 연명으로 무승사를 황태자로 봉하라고 상소했다. 장수 2년(693년) 설날에 거행된 제사에서 무측천이 초헌을 올리고 무승사와 무삼사에게 아헌과 종헌을 올리게 했다. (아헌과 종헌 모두 조상에게 올리는 술을 따르는 것으로 황제의 후계자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 진정한 당나라 황태자 이단李旦은 한쪽 옆에 초라하게 서 있기만 했다...

동아시아 역사 201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