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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 3

단군왕검 이두문-신지의 역사

단군왕검 이두문-신지의 역사 神誌의 역사 - 조선상고사 전사前史(단군왕검 이두문 시절)에 단군왕검 때에 신지神誌라는 사람이 있어 사관史官이 됐다 하였으나, 사실은 곧 신치의 번역이요, 신치는 신크말치의 약자요, 신크치는 신가의 별칭이요, 신가는 앞에서 말한 다섯 가의 수석首席 대신이니, 신치 곧 신가가 늘 신수두의 제일祭日에 단군왕검 이두문으로 우주 창조의 신화와 영웅과 용사 등이 행한 일과 예언, 유의, 경계하는 이야기를 노래하여 역대로 예가 되었다. 후세에 문사文士들이 그 노래를 거두어 한 책을 만들고, 그 벼슬 이름 신치로 책 이름을 한 것이니, 이른바 단군왕검 이두문으로 신지가 곧 그것이다. 이제 신지의 원서가 없어져서 그 가치의 어떠함을 알 수 없으나, 그 책 이름이 단군왕검 이두문으로 지은 것..

동아시아 역사 2017.08.26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2~1위 - 고구려 멸망

출처 - 기억나질 않음 5.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2위 2위는 바로 고구려의 멸망이다. 고구려의 멸망은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의 일이다. 고구려가 역사의 전통을 이어나갔다면, 중국, 오랑캐, 왜구와의 격돌이 더 많았겠지만, 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법, 우리는 더욱 강성한 역사의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역사가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신라의 삼국통일로 우리나라는 당시 인구와 국토 면적이 국력을 좌우하던 시기에 강력한 국가로 거듭나는 조건을 상실하였으며, 사대주의 사상과 무武를 경시하는 기조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뛰어난 역사적인 힘을 자랑하지만, 한반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국한된 소극적인 전통에 불과하게 되었다. 만약 고구려가 그 전통을..

동아시아 역사 2017.05.17

환단고기 계보 2 - 단군조선, 왕검에서 솔나까지

☆ 단군조선 단군 계보47대, 존속연도 : 2096년 1. 왕검王儉 - 93 - B.C.2333이에 천하의 땅을 새로 갈라서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니, 삼한은 모두 오가五加 64족을 포함하였다. 2. 부루扶婁 - 58 - B.C.2240단제께서는 어질면서 다복하셔서 재물을 저장하니 크게 풍부하였으며, 백성과 더불어 함께 산업을 다스리시니 한 사람도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자가 없었다. 봄, 가을로 나라안을 두루 살펴보시고는 하늘에 제를 올려 예를 다하였다. 여러 왕들의 잘잘못을 살피시고 상벌을 신중히 하였으며 도량을 파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며 농사짓고 뽕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하였다. 또 기숙사察를 설치하여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는 크게 진보하여 그 명성이 날로 떨쳐졌다. 3. 가륵嘉勒 - 45 - ..

동아시아 역사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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