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 3

고려 유명한 인물들 - 서긍이 꼽은 이자겸, 윤언식, 김부식, 김인규, 이미지

수태사상서령 이자겸 守太師尙書令 李資謙 고려는 본래부터 족망族望을 숭상하고 국상國相은 거의 훈척勳戚 나라에 공이 있는 임금의 친척을 임용한다. 왕운王運(14대 헌종)으로 부터 이씨李氏의 후손에게 장가들었는데, 왕우王俁(16대 예종)도 세자世子 때에 또한 이씨의 딸을 맞아 비妃로 삼았다. (출처 : 이자겸의 난 Part 1 왕보다 힘센 이자겸 - 외척의 강세 | 고려 역사애니메이션★지니키즈 타임머신) 이로 말미암아 문호門戶가 빛나고 드러나기 시작하여, 자겸의 형 자의資義가 전대前代 왕 때에 이미 국상이 되었다가 일에 연좌되어, 유찬流竄 귀양보내는 것 되었기 때문에 자겸이 형의 일을 경계 삼아 매양 스스로 조심하였으므로, 왕우가 깊이 신임하고 중히 여겨 춘궁春宮 세자의 스승이자 벗으로 삼았다. 이때 왕해王楷..

동아시아 역사 2017.07.03

윤언이가 아깝지 묘청은 아깝지 않다던 단재의 글

고려사 묘청전(妙淸傳)을 보면, 묘청이 일개 서경(西京 : 평양)의 한 중으로서, "평양에 도읍을 옮기고 금국(金國)을 치자."하매, 일시에 군왕 이하 많은 시민의 동지를 얻어서 기세가 혁혁하다가, 마침내 평양에 웅거하여 나라 이름을 대위(大爲)라 하고, 원년 연호를 천개(天開)라 하고, 인종(仁宗)더러 대위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협박장 식의 상소를 올렸다. 반대당의 수령인 한낱 유생 김부식이 왕사(王師)로서 와서 문죄(問罪)하니, 묘청이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부하에게 죽었으므로 묘청을 미친 자라고 한 사평(史評)도 있지마는, 당시의 묘청을 그처럼 신앙한 이가 많았음은 무슨 까닭이며, 묘청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패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고려사의 세기(世紀)와 열전(列傳)을 참고하여 보면 태조 왕건..

동아시아 역사 2017.05.27

좋은 소재를 망쳐버린 책. [김부식과 일연은 왜?] 대체 왜 이렇게 책을 썼을까

우리 고대사를 다룬 두 개의 시각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책의 제목 자체는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책의 시작부부터 동의하기 힘든 주장들이 담겨있습니다. 김부식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세력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신라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은 인물이 김부식. 백제 본기에 나온 사대주의적 사고. 김부식은 오히려 주모자들의 목만 베려했으나, 개경의 인사들이 무자비하게 진압할 것을 요구했고, 신라의 정치적 유산이란 거 실제로 있다손 치더라도, 그 당시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으며, 김부식 본인이 신라 사람이란 인식보다 고려 사람이란 인식이 있었을 터, 김부식 본인에게 신라의 정치적 유산까지 이어 붙이는 건 순전히 억지에 불과합니다. (망한지도 수백 년이..

동아시아 역사 2016.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