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 26

테러란 무엇인가? 정의와 역사

테러(terror) [명사] 온갖 폭력을 써서 남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 테러리스트의 준말 테러리즘의 준말 테러리즘(terrorism) [명사]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암살이나 폭행, 숙청 따위의 직접적인 공포 수단을 이용하는 주의나 정책 특히, 프랑스 혁명 당시의 과격파인 자코뱅당의 정책을 가리킴. 폭력주의. 테러리스트(terrorist) [명사] 테러리즘을 신봉하는 사람. 폭력주의자. (출처 : 바이두 백과) 테러의 정의와 역사 테러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친숙하게 통용되고 있지만 그 정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규정된 바가 아직 없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심지어 같은 나라 내 부처마다 다른 정의가 내려지기도 하는데 대체로 그것들을 통합해보면, 테러리즘이란 주권국가 혹은 특정 ..

동아시아 역사 2017.07.31

조선 말기 발간된 신문 종류 (일제강점기 전)

개화기에는 국내외 사정을 민중에게 알려 계몽하기 위해 다양한 신문 발간이 이루어졌다. 나라에서 발간한 한성순보를 시작으로 민간신문들이 차례로 창간되었다. 신문들은 국내외의 사건들을 보도하고 정부시책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영문판을 발행하여 당시 우리의 상황을 외국에 알리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각종 민간신문은 논리적이고 호소력 있는 논조로 민중의 자주독립과 애국심을 고취했으며, 일본의 내정간섭을 강하게 비판하는 등 민족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출처 : 한성순보 영인본) 1. 한성순보漢城旬報, 한문판 1883년. 10. 01(음력) 창간1884년. 10. (음력) 폐간 - 출판 업무를 맡아보던 정부 기관인 박문국博文局에서 창간한 최초의 근대 신문으로 관영신문의 성격을 지님- 갑신..

동아시아 역사 2017.07.30

테러란 무엇인가? 국제 테러조직 종류

국제 테러 조직1968년 이후 테러 관여 집단 수는 73개국 220여 개 조직에 이르며, 이들 집단의 인적 교류에서 연계된 이합집산離合集散 추이까지 더하면 그 수는 300개를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상호협조, 연계활동을 통해 능력을 강화하고 국가 간에 이념과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에는 적대국에 대한 테러행위를 묵인, 또는 조장, 방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출처 : 君合法评丨《反恐怖主义法》对电信及互联网行业的影响) (1) 이슬람권의 테러조직성전聖戰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회교 지하드(Al al Islam:Islamic Holy War Jihad)는 이란 회교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과격단체로 아직도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3년 4월 18일 베이루트 주재 미..

동아시아 역사 2017.07.29

동방의 자취를 오늘날에 증명할 수 있겠는가? (정조의 물음)

금대전책 지리책 - 정조의 물음 우리 동방으로 말한다면, 한쪽은 대륙과 연접되어 있고, 삼면은 바다로 막혀 있다. 조선朝鮮이라는 호칭은 멀리 단군檀君 시대 때부터 있었고, 숙신肅愼의 명命이라는 말이 주周나라의 역사에 실려 있다. 한漢 나라 무제武帝는 사군四郡으로 나누어 설치하고, 당唐나라 고종 高宗은 구부九府를 예전 그대로 설치하였다. 구부九府 -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지역에 설치한 아홉 도독부都督府를 말한다. 당나라가 668년(보장왕 27)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고구려의 옛 땅을 신성新城, 요성遼城, 가물哥勿, 위락衛樂, 사리利, 거소居素, 월희越喜, 거조去朝, 건안建安의 아홉 도독부로 나누고,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 都護府를 두어 이들을 관장하여 통치하게 하다. 그 지역과 그 자취에 대..

동아시아 역사 2017.07.28

세계 인쇄 문화 연표 - 세계편

세계편 B.C, 4000년 -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로 새긴 책 간행 B.C, 3500~3000년 - 이집트 상형문자로 쓴 파피루스 책 간행 B.C, 1700년 - 페니키아민족 알파벳문자 개량 B.C, 1200년 - 은나라 갑골문자 사용 B.C, 238년 - 서양에서 로마문자 사용 B.C, 100년 - 한나라에서 문자 사용 105년 - 채륜蔡倫이 종래의 제지법 개량하여 다량 생산175년 - 한나라 석경石經을 대학문 밖에 세워 탁인托印 시작 270년 - 중국 먹墨 만들어냄 610년 - 고구려 담징曇徵이 일본에 채색법, 종이와 먹 만드는 법을 전함 700년 전후 - 정국에서 목판 인쇄술 싹틈770년 무렵 - 일본 백만탑다라니 간행 868년 - 당나라 왕개王玠 금강반야바라밀경 간행 956년 - 오월국왕 전홍숙錢..

동아시아 역사 2017.07.27

신라 시대 인쇄술 - 화엄경, 다라니경, 민정 문서(촌락 문서)

고대의 각종 그림과 기호, 상징과 같은 초기 기록문화단계를 거쳐 중국에서 전파된 한자漢字를 바탕으로 각종 비문碑文과 금석문金石文이 만들어졌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각종 목간木簡과 닥종이에 먹으로 쓴 사경寫經이 제작되었으며, 문헌 기록에 의하면 역사책이 편찬되는 등 기록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한편,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하고 이와 함께 각종 서적이 유입되면서 생산된 기록을 보급하고 유통할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이를 위해 독자적인 판본板本을 만들어 기록을 다량으로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는데, 나무판에 문자를 새기고 이를 종이에 찍는 목판 인쇄가 시작이었다. 한국에서 특판인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66년 10월에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

동아시아 역사 2017.07.26

백제의 첨단 무기와 전쟁 연표

백제 하이테크 신무기 삼국시대 무덤과 산성에서 발견되는 말갖춤(마구류 馬具類)은 고대사회의 전쟁, 철기제작기술, 집단 간의 교류와 계층성 문제 등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유효한 자료이다. 백제에서는 표비鑣轡, 판비板轡, 환판비環板轡 등 세 가지 재갈이 출토되고 있으며, 발걸이(등자 鐙子)는 나무를 가공하여 모양을 제작한 후, 그 외면을 철판으로 보강하여 만든 발걸이木心鐵板被輪鐙가 주로 출토되고 철제 발걸이도 확인된다. 특히 한강 유역에서는 부여, 고구려, 낙랑 지역에서 출토되는 재갈, 말방울馬鈴, 말발굽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에는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다가, 4세기 이후에는 말갖춤이 신분을 상징하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 됨에 따라 안장鞍裝, 말드리개杏葉, 말띠꾸미개雲珠 등에 무늬와 호화로운 금..

동아시아 역사 2017.07.24

초한전에서 한고조가 항우를 이긴 이유 세 가지

출처 - 한 권으로 읽는 중국 고전, 이우각, 동양고전연구모임 항우와 유방의 대결 진의 시황제가 죽은 뒤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진 제국이 천하 통일 후 겨우 15년 만에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그 뒤 천하를 양분해서 대결한 것이 초의 패왕 항우와 한의 유방 이 두 명의 영결이다. 이것을 중국 역사상에서 초한초한의 싸움이라 한다. 두 사람의 격돌은 3년 가까이 끌었는데 처음에는 항우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유방은 고전의 연속이었고, 항우의 막강한 군단에 시종 압도당하여 싸울 때마다 패배를 맞보고 겨우 지탱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대결이 1년이 지나고 2년째 접어들 무렵부터 서서히 형세가 바뀌었다. 전술 면에서는 의연히 항우 쪽이 우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공세를 취하고 있는 항우 쪽은 숨찬 기력이..

동아시아 역사 2017.07.23

고려시대 인쇄술 - 원각류해, 동국이상국집, 팔만대장경 등

신라의 목판 인쇄술을 이어받은 고려는 불교국가로서의 이념과 체제정비의 수단으로서 인쇄술을 발전시켰다. 특히 중국에서 각종 서적이 대거 수입되고 다라니경을 비롯한 각종 불경, 대장경 등이 거대한 국가사업으로 간행되면서 고려의 인쇄술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1007년에 개성 총지사摠持寺에서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을 목판으로 인쇄하였으며,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교장敎藏,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팔만대장경)의 간행이 연이어 이루어졌다. 고려 시대는 이 외에도 사찰을 중심으로 각종 경전經典과 고승들의 시詩, 문집文集 등의 간행이 성행하면서 목판 인쇄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목판 인쇄의 융성과 함께 금속활자의 인쇄가 실용화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금속활자가 창안된 시기에 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

동아시아 역사 2017.07.22

청주 백제 유적과 유물 - 송절동, 봉명동, 신봉동 유적

미호천변의 풍경, 청주 송절동 유적 청주 송절동 유적은 청두 도심의 서쪽, 미호천과 맞닿은 낮은 구릉지대에 넓리 분포한 마한 시기의 무덤이다. 무덤은 기다란 구덩을 파고 널만 사용한 널무덤과 널 밖에 덧널을 덧댄 덧널무덤이 있다. 또 두 사람을 함께 묻었던 어울무덤도 확인되었다. 또 껴묻거리널을 따로 만든 무덤과 주위에 눈썹 모양의 도량을 갖춘 무덤도 있다. 무덤 안쪽에는 토기, 철기,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주로 둥근 단지와 바리가 짝을 이루고 있다. 철기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 유적은 2~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백제의 중앙세력이 미치기 이전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 정치 집단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백제의 땅 대길大吉, 청주 봉명동 유적 청주봉명동유적은 해발..

동아시아 역사 2017.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