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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 지원군이 북한에서 저지른 성범죄, 1954~1956년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9. 18. 11:28

중국 인민 지원군이 북한에서 저지른 성범죄, 1954~1956년


성범죄를 저지른 중국지원군 실태중국은 북한의 오랜 우방


중국 인민 지원군은 북한에 주둔하면서 그들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북한의 전후 복구사업을 도왔다. 중국 인민 지원군의 주둔 목적은 노동력을 활용하여 북한을 지원하고 안보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중국 인민 지원군이었다.


하지만 과연 북한도 이들의 주둔을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북한과 중국의 공개 자료들은 대부분 중국 인민 지원군의 성과만을 위주로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중국 인민 지원군이 들어올 때부터 이들이 들어오면 상황이 변화되리라 예측하였고, 실제로 이들이 북한에 주둔하고 있음으로써 중국은 북한의 내정에 간섭할 수 있었다.

양국의 갈등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점차 갈등 관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재중화인민공화국 소련대사관 보고 1956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소련대사관에 잠입한 중국의 비밀정보원은 중국 인민 지원군이 북한에서 마치 점령군처럼 무례하고 북한정치에 내정간섭을 한 몇몇 사례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중국인민지원군 북한 성범죄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인민지원군


이러한 사안에 대해 신화사의 비밀 보고는 이렇게 언급하였다.


현재 상황에서 다수의 조선인은 중국 인민 지원군 부대를 마치 점령군처럼 보고 있다. 북한에서 향후 주둔은 바람직하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1957년에도 계속되었는데, 1957년 7월 말 소련대사는 박정애에게 중국 인민 지원군과 북한 주민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박정애는


"극단적인 수단을 취하지 말 것"


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명의 주민이 중국 인민 지원군에 의하여 사살된" 사건마저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했다.


중국인민지원군 성범죄 북한1.4 후퇴를 유발한 중국인민지원군


이러한 몇 가지 자료는 1958년 중국 인민 지원군의 주둔 기간까지 이들의 행동으로 북한 정부와 주민들과의 마찰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또한, 어느 연구자가 북중 국경지방에서 한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중국 인민 지원군이 북한에 주둔하면서 교통사고, 무기분실, 강간 등의 사건이 증가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반감이 컸다고 한다.


당시 중국 인민 지원군의 도둑질 문제로 '중조인민이여, 단결하라, 공동으로 좀도둑에 반대한다'는 대자보까지도 붙었다고 한다.


중국인민지원군 성범죄중국인민지원군 미화 포스터


또한, 1954년에서 1956년 중국 인민 지원군이 일으킨 교통사고 등으로 약 417명이 사망했고, 1954~1955년 강간사건 68건, 1956년 상반기 강간, 강간미수, 통간 사건이 208건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 인민 지원군이 주둔하는 기간이 연장되면서 북중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출처 : 중국 인민 지원군과 북중 관계, 박영실, 선인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