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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서주 대학살] 후한서 도겸전과 자치통감 기록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8. 19. 11:35

[삼국지 서주 대학살] 후한서 도겸전과 자치통감 기록


[후한서] 도겸전

초평 4년, 조조가 도겸을 공격해 팽성국 부양傅陽현을 격파하자 (주1) 도겸이 물러나 담현을 보전했다. 조조가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자 돌아왔다.


지나는 길에 취려, 저릉(수릉), 하구를 함락하고 모두 도륙했다. (주2) 모두 남녀 수십만 명을 죽이고 닭과 개조차 남지 않으니 사수가 이 때문에 흐르지 못했다.


이로부터 5개 현의 성보城保에 다시는 (사람의) 행적이 없었다. 애초 삼보에서 이각의 난을 만난 이래 백성들이 유이流移하여 도겸에 의탁한 자들이 모두 섬멸되었다. (주3)


삼국지 조조. 난세의 영웅삼국지 조조. 난세의 영웅


흥평 원년, 조조가 다시 도겸을 공격해 낭야, 동해의 여러 현들을 공략해 평정하니 도겸이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단양으로 달아나 되돌아가고자 했다. 때마침 장막이 여포를 맞이해 연주를 점거하자 조조가 돌아가 여포를 공격했다.


이 해 도겸이 병으로 죽었다.

(주1) (부양은) 현 이름으로 팽성국에 속하며 본래 춘추시대에 핍양偪陽이다. 초선왕이 송나라를 멸하고 부양으로 고쳤다. 옛 성이 지금 기주沂州 승현 남쪽에 있다.


(주2) 取慮의 음은 秋閭로 현 이름이고 하비군에 속한다. 옛 성이 지금 사주泗州 하비현의 남서쪽에 있다. 저릉(수릉)은 현이고 (지금) 하비현의 동남쪽에 있다. 하구는 현이고 패군에 속한다. 옛 성은 지금 사주 홍현의 그것이다.


(주3) 殲은 盡이다. 좌전에서 ‘門官殲焉’이라 했다.


조조. 삼국지 서주 대학살조조. 삼국지 서주 대학살


자치통감 (자치통감 기록은 삼국지[클릭]와 후한서 기록을 정리한 것)


(초평 4년) 가을,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도겸을 공격해 10여 성을 함락시키고 팽성에 이르러 크게 싸웠는데, 도겸군이 패하자 달아나 담현을 보전했다.


애초, 경京, 락雒에서 동탁의 난을 만나자 백성들이 유이流移(유망,유랑)하여 동쪽으로 나와 서주 땅에 의탁한 자가 많았는데, 조조가 당도하여 남녀 수만 명을 사수에서 갱살하니 이 때문에 강물이 흐르지 못했다.


조조는 담현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이내 떠나서 취려取慮, 수릉, 하구의 여러 현을 공격해 차지하고 이들을 모두 도륙하니 닭이나 개조차 다 없어지고 폐허가 된 읍에는 다시는 행인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후한서, 자치통감 삼국지 서주 대학살


신동준 씨의 자치통감 삼국지에선 ‘攻取慮’ ‘여현(慮縣-하남성 회양현)…을 공격하여’로 풀어놓았습니다. 공취라는 말이 관용적으로 쓰이니까 攻取/慮 로 끊은 것 같은데, 그보다는 攻/取慮 즉, ‘취려현을 공격했다’가 맞는 거 같습니다.


여현이란 지명은 후한서 군국지 상으로는 찾을 수 없고 또 같이 열거되는 다른 현들이 모두 하비국 소속임을 볼 때 문맥상 이게 맞겠죠.


(흥평 원년) 여름 4월, 마등을 안적장군, 한수를 안항장군으로 삼았다.


조조가 사마 순욱, 수장령 정욱을 시켜 견성을 지키게 하고 다시 가서 도겸을 공격했다. 땅을 공략하며 마침내 낭야, 동해에까지 이르렀는데 지나는 곳마다 잔멸殘滅시켰다. 돌아와서 담현 동쪽에서 유비를 격파했다.


도겸이 두려워하며 단양丹楊으로 달아나 되돌아가려 했는데, 때마침 진류태수 장막이 조조를 배반하고 여포를 맞아들이니 이에 조조는 군을 이끌고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