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단재의 만주족, 몽고, 터키에 대한 인식 (조선상고사 4장)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5. 26. 19:50

제 4장 사료의 수집과 선택


만일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여야 하겠느냐 하면, 그 대답이 매우 곤란하나, 우선 나의 경과부터 말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16년 전에 국치(國恥 : 국권침탈, 을사늑약을 말함)에 분발하여 비로소 동국통감(東國通鑑)을 읽으면서 사평체(史評體)에 가까운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지어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지상에 발표하고, 이어서 수십 학생들의 청구 때문에 지나식(支那式)의 연의(連義)를 본받은 역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대동사천년사(大東史千年史)란 것을 짓다가, 두 가지 다 사고로 인하여 중지하고 말았었다.


대한매일신보대한매일신보


그 논평의 독단(獨斷)임과 행동의 대담 하였음을 지금까지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니와, 그 이후 얼마만큼 분발하여 힘쓴 적도 없지 아니하나 나아간 것이 촌보(寸步)쯤도 못 된 원인을 오늘에 와서 국내 일반 독사계(讀史界)에 호소하고자 한다.


(1, 2, 3, 4는 생략)


5) 만(滿)ㆍ몽(蒙)ㆍ토(土) 여러 종족의 언어와 풍속의 연구이다. 김부식은 김춘추(金春秋)ㆍ최치원(崔致遠) 이래의 모화주의(慕華主義)의 결정(結晶)이니, 그가 저술한 삼국사기에 고주몽(高朱蒙)은 고신씨(高辛氏 : 고대 중국 5제의 한 사람)의 후예다, 김수로(金首露)는 금천씨(金天氏 : 黃帝의 아들 少昊)의 후예다, 진한(辰韓)은 중국 진인(秦人)이 동래(東來)한 것이다 하여, 말이나 피나 뼈나 교나 풍속이 한 가지도 같은 것이 없는 지나족을 동종(同宗)으로 보아, 말살에다 쇠살을 묻힌 어림없는 붓을 놀린 뒤로 그 편벽된 소견을 간파한 이가 없었으므로, 우리 부여의 족계(族系)가 분명치 못하여 드디어는 조선사의 위치를 캄캄한 구석에 둔 지가 오래였다.


언제인가 필자가 사기(史記) 흉노전(匈奴傳)을 보니, 삼성(三姓)의 귀족 있음이 신라와 같고, 좌우 현왕(賢王) 있음이 고려나 백제와 같으며, 5월의 제천(祭天)이 마한과 같고, 무기일(戊己日)을 숭상함이 고려와 같으며, 왕공(王公)을 한(汗)이라 함이 삼국의 간(干)과 같고, 벼슬 이름 끝 글자에 치(鞮)라는 음이 있음이 신지(臣智)의 지(智)와 한지(旱支)의 지(支)와 같으며, 후(后)를 알씨(閼氏)라 함이 곧 ‘아씨’의 번역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생겼다. 인축(人畜)ㆍ회계(會計)하는 곳을 담림(儋林) 혹은 대림(蹛林)이라 함이 ‘살임’의 뜻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휴도(休屠)는 소도(蘇塗)와 음이 같을 뿐 아니라, 나라 안에 대휴도(大休屠)를 둔 휴도국(休屠國)이 있고, 각처에 또 소휴도가 있어서 더욱 삼한의 소도와 다름이 없었다.


이에 조선과 흉노가 3천 년 전에는 한방 안의 형제였다는 의안(疑案)을 가져 그 해결을 구하다가, 그 뒤에 건륭제(乾隆帝)가 명하여 지은 만주원류고(滿洲源流告)와 요(遼)ㆍ금(金)ㆍ원(元) 세 역사의 국어해(國語解)를 가지고 비교하여보았더니, 비록 그 가운데 부여의 대신 칭호인 ‘가(加)’를 음으로 풀이하여 조선말 김가 이가 하는 ‘가’와 같은 뜻이라 하지 않고 뜻으로 주석하여 가(家)의 잘못이라 하였으며, 금사(金史)ㆍ발극렬(勃極烈)을 음으로 맞는 신라의 불구래[弗矩內]에 상당한 것이라 하지 않고 청조(淸朝)의 패륵(貝勒 : 패리)의 동류라 한 것 등의 잘못이 없지 아니하나, 주몽(朱蒙)이 만주어(滿洲語) ‘주림물’ 곧 활을 잘 쏜다는 뜻이라 하고, 옥저(沃沮)가 만주어의 ‘와지’ 곧 삼림의 뜻이라 하고, 삼한의 벼슬 이름의 끝자 지(支)가 곧 몽고어 마관(馬官)을 ‘말치’, 양관(羊官)을 ‘활치’라 한 '치‘의 유라 하고, 삼한의 한(韓)은 가한(可汗)의 한(汗)과 같이 왕을 일컬음이고 국호가 아니라고 한 것 등 많은 상고할 거리를 얻었다.


추모왕 기념 우표추모왕 기념 우표


또 그 뒤에 동몽고(童蒙古)의 중을 만나 동몽고 말의 동ㆍ서ㆍ남ㆍ북을 물으니 연나ㆍ준나ㆍ우진나ㆍ회차라고 하여, 고려사의, “동부를 순나라하고(東部曰順那), 서부를 연나라 하고(西部曰涓那), 남부를 관나라 하고(南部曰灌那), 북부를 절나라 하고(北部曰絶那)”고 한 것과 같음을 알았다.


또 그 뒤 일본인 조거용장(鳥居龍藏)이 조사 발표한 조선ㆍ만주ㆍ몽고ㆍ토이기 네 종족의 현행하는 말로 같은 것이 수십 종(이에 나의 기억하는 바는 오직 貴子를 ‘아기’라, 乾醬을 ‘메주’라 하는 한두 가지뿐임)이 있음을 보고, 첫째 조ㆍ만ㆍ몽ㆍ토 네 가지 말은 같은 어계(語系)라는 억단(臆斷)을 내렸고, 지나 24사(史)의 선비ㆍ흉노ㆍ몽고 등에 관한 기록을 가지고 그 종교와 풍속의 같고 다름을 참조하고, 서양서로써 흉노의 유종(遺種)이 토이기(土耳其 : 터키)ㆍ흉아리(匈牙利 : 헝가리) 등지로 옮겨간 사실을 고열(考閱)하여, 조선ㆍ만주ㆍ몽고ㆍ토이기 네 종족은 같은 혈족이라는 또 하나의 억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도리이 유조. 환빠가 좋아하는 사람도리이 유조. 환빠가 좋아하는 사람


이 억단의 옳고 그름은 고사하고 조선사를 연구하자면 조선의 고어뿐 아니라 만주어ㆍ몽고어 등도 연구하여 고대의 지명ㆍ벼슬 이름의 뜻을 깨닫는 동시에, 이주(移住)하고 교통한 자취며, 싸우고 빼앗은 자리며, 풍속의 같고 다른 차이며, 문야(文野 : 문명과 야만)의 높고 낮은 원인을 규명하고, 그 밖에 허다한 사적의 탐구와 잘못된 문헌의 교정 등에도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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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빠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단재께선 북방 이민족을 우리와 같은 한민족으로 생각하셨다는 것이죠. 근데, 그들은 결코 단재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거짓 주장에 힘을 실으려고 위인의 이름을 팔아먹는 것에 불과합니다. 조선상고사에서도 나오지만, 단재께선 결코 북방 이민족들을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만주어. 전혀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어만주어. 전혀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어


오랜 옛날엔 같은 민족이었을지언정, 이후엔 다른 민족으로 나뉘어 역사를 공유하지 못한 채 분열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조거용장(도리이 유조)이 주장한 북방 이민족과 조선의 어계 공통점이야말로 환빠들이 주장하는 그것과 논리가 같습니다. 국수주의에 빠진 자들이 오히려 일제강점기 시절의 일본인 학자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죠. 누가 대체 친일파란 말입니까?


단재께선 만주족, 몽고, 터키를 비롯한 예전 북방 이민족과 우리 민족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글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결코 같은 민족이 아니라 주장하셨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환빠들은 단재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일제강점기 시절 도리이 유조 같은 식민 사학자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환빠들이야말로 척결해야 할 친일파에 불과한 존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