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곡주후 역상, 별동대의 선봉장이었던 그에 대해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5. 2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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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용호상박의 명장들, 장개충


별동대의 선봉장 역상


곡주후曲周侯 역상酈商은 고양(허난성 진류현) 사람이다. 진승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역상은 젊은이들을 모아 부근의 지역을 닥치는 대로 공략하는 과정에서 수천 명의 부하를 얻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자 유방이 진류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역상은 4천 명의 군졸을 데리고 기 땅에서 유방에게 귀속했다. 역상은 유방을 따라 장사(허난성 장갈현長葛縣)를 공격할 때 선봉에 섰던 공으로 작위를 받아 신성군에 봉해졌다.


곡주후 역상의 동상곡주후 역상의 동상

(출처 : 郦商勇猛堪比樊哙)


이어 유지(허난성 언수현)를 공격하고 황하의 나루터를 차단해 진나라 군사를 낙양의 동쪽에서 격파했다. 또 유방을 따라 완(허난성 남양현), 양(허난성 등현)을 공략하고 함락시키는 등 17개 현을 평정했다. 게다가 별동대를 거느려 순관(섬서성 순양현)을 공격해 한중을 평정하기도 했다.


항우가 진秦을 멸망시킨 뒤 유방을 세워 한왕으로 삼았다. 한왕은 역상에게 신성후의 작위를 하사하고 장군의 직위를 주어 농서(감숙성)의 도위로 일하게 했다. 그 뒤 역상은 독자적으로 별동대를 거느리고 북지와 상군(섬서성 일대)을 평정했했으며, 언지(감숙성)에서는 옹의 장군을, 순읍(섬서성)에서는 장한의 별장 주류를, 이양(감숙성)에서는 소장의 군을 격파했다. 그 공으로 무성(섬서성)의 6천 호를 식읍으로 받았다. 


또 농서 도위로서 한왕을 따라가 항우를 공격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거야, 산동으로 출격해 종리매와 격전을 치르며 5개월 만에 승리해 양梁나라 상국의 인수를 받고 식읍 4천 호를 추가했다. 그는 양나라의 상국 신분으로 장군이 되어 유방을 따라 2년 3개월 동안이나 항우를 쳤다. 또한, 호릉을 공격해 취했다.


항우가 패전해 죽자 유방이 황제가 되었다. 그해 가을 연왕燕王 장도臧荼가 모반했을 때, 역상은 장군의 신분으로 장도를 토벌했다. 용탈(하북성)의 전투에서는 그가 선봉장이 되어 먼저 성루에 올라 적진을 혼란에 빠뜨렸고 역현(하북성)에서 장도의 군사를 격파했다. 승진하여 우승상이 되고 열후의 작위를 받고 부절을 나누어 받아 대대로 세습이 허용되었다. 식읍으로 탁현(하북성)의 5천 호를 받았으며 탁후라 불렸다.


연왕 장도. 반란을 실패로연왕 장도. 반란을 실패로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우승상의 신분으로 또 상곡(하북성)을 평정하고 대代 땅을 공격해 그 공로로 조나라 상국의 인수를 받았다. 그는 다시 우승상 및 조의 상국으로 주발 등과 함께 대 땅과 안문(산서성의 군명)을 토벌해 대의 승상 정종과 수상(숭상보) 곽동 및 장군 이해 6백 석 지위를 가진 관리 19명을 사로잡았다. 개선하여 장군으로서 태상황의 위장衛將으로 1년 7개월 동안 근무했다.


그 뒤 우승상 신분으로 진희를 토벌해 동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며, 고조(한나라 고조 유방)를 따라 경포唱布를 토벌했다. 이 토벌에서 진지 두 개를 격파함으로써 토벌을 가능 케했다. 그 공으로 곡주(하북성) 5천 1백 호를 식읍으로 받고 먼저 받았던 식읍을 돌려주었다.


그동안 역상이 별동군을 이끌고 격파한 군사가 3개 군단, 항복 받아 평정한 군郡이 6개, 현이 73개, 승상, 수상, 대장이 각각 한 명씩, 소장小將이 두 명, 봉록 2천 석 이하 6백 석에 이르는 관리 19명을 사로잡았다. 


역상은 효혜제를 섬기고 고후(여태후) 때에는 신병으로 정사를 돌보지 못했다. 그의 아들 역기酈寄는 자를 황이라 했다. 여록(여후의 조카)과 친했다. 여태후가 죽자 대신들은 여씨 일족을 섬멸코자 했으나 여록이 북군北軍을 장악하고 있는 장군이었기에 태위 주발조차 북군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나라 태위 주발한나라 태위 주발

(출처 : 周勃安刘)


결국, 역상의 아들 역기를 협박해서 여록을 유인해 나오도록 했다. 여록은 역기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멋모르고 진지를 나와 강가에서 노닐었다. 장군이 없는 틈을 타 태위 주발이 재빨리 북군으로 들어가 병권을 탈취한 뒤 비로소 여씨 일족을 주멸할 수 있다.


"친구를 팔아먹은 놈!"


천하 사람들은 역기를 그렇게 욕했다. 역상은 바로 그해에 죽었으며 시호를 경후라 했다. 아들인 역기가 작위를 계승해 후가 되었다.


효경제 전원 3년에 오, 제, 초, 조나라 등 7명의 제후가 동시에 모반했다. 효경제는 역기를 장군으로 삼아 나라를 치게 했다. 그러나 10개월이 지나도록 조성趙城(산서성 곽현)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 뒤 유후兪侯 난포欒布가 제나라를 평정한 뒤 돌아와서 역기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간신히 조나라 성을 함락시킬 수가 있었다. 조왕은 자살했으며 조나라는 없어졌다.


오초칠국의 난 형세도오초칠국의 난 형세도

(출처 : 吴楚七国之乱是怎么回事 后事如何评价)


오초칠국의 난 이전의 형세도. 삭번 정책 이전 지도오초칠국의 난 이전의 형세도. 삭번 정책 이전 지도

(출처 : 吴楚七国之乱是怎么回事 后事如何评价)


효경제 중원 2년이었다. 효경제의 왕황후 모친인 평원군은 젊고 아름다웠다. "내 아내로 취하고 싶다!" 역기의 말이 효경제의 귀에 들어갔다. 진노한 경제는 역기를 형리한테 넘겼고 역기가 평원군을 탈취하려 했던 사실이 입증되었다. 역기는 유죄가 인정되어 작위를 박탈당했다. 경제는 역상의 서자 역견을 목후에 봉하여 역씨의 후사를 잇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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