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초한전에서 한고조가 항우를 이긴 이유 세 가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7. 23. 13:35

출처 - 한 권으로 읽는 중국 고전, 이우각, 동양고전연구모임


항우와 유방의 대결


진의 시황제가 죽은 뒤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진 제국이 천하 통일 후 겨우 15년 만에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그 뒤 천하를 양분해서 대결한 것이 초의 패왕 항우와 한의 유방 이 두 명의 영결이다. 이것을 중국 역사상에서 초한초한의 싸움이라 한다.


두 사람의 격돌은 3년 가까이 끌었는데 처음에는 항우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유방은 고전의 연속이었고, 항우의 막강한 군단에 시종 압도당하여 싸울 때마다 패배를 맞보고 겨우 지탱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대결이 1년이 지나고 2년째 접어들 무렵부터 서서히 형세가 바뀌었다. 전술 면에서는 의연히 항우 쪽이 우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공세를 취하고 있는 항우 쪽은 숨찬 기력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반대로 공격을 받은 유방 쪽은 여유조차 보이기 시작했다.


2년째가 지나자 형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전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유방 쪽이 우위에 서고 항우의 열세는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이윽고 항우는 사면초가 상태로 막다른 곳까지 몰리게 되어 "우虞야, 우야! 그대를 어떻게 하지!"하고 우미인을 끌어안으면서 멸망해 갔다.


우미인을 잃은 항우우미인을 잃은 항우

(출처 : 全面战争:楚汉风云)


우세했던 항우가 왜 패했는가! 열세한 유방이 왜 역전승에 성공했는가! 그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유방 쪽은 항우에 대한 포위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유방은 처음 열세에 빠졌을 때 벌써 이 포위망 조성에 착수했는데 그것이 1년 뒤에 결실을 보아 차츰 항우를 '독 안의 쥐' 같은 상태로 몰아넣었다. 정치 전략의 승리라 해도 좋을 것이다.


두 번째로 유방 쪽은 모략 공작으로 항우 진영을 이간시키고 상대방의 군신 관계를 뿔뿔이 흩어지게 한 것이다. 따라서 항우 쪽의 조직적인 힘을 완전히 약화해 버렸다.


세 번째로 보급 문제다. 유방 쪽은 병참 후방의 원호 체제가 견고했다. 따라서 군사나 물자 보급을 충분히 받을 수가 있었다. 전투에 거듭 패해도 태세를 가다듬어 상대의 결정타를 피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점에서 항우 쪽은 보급을 받을 만한 후방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력이 회복되지 않고 조금씩 열세로 몰렸다.


전략 전술상에서 보면 이상의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보다 더 승패의 포인트가 된 것은 두 지도자의 그릇 차이였다. 유방은 항우를 멸하고 낙양으로 개선했을 때 자신의 이긴 원인과 항우의 패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작전을 짜고 계략을 꾸며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점에서 나는 장량을 당해 내지 못한다. 내정의 충실, 민생의 안정, 군량의 조달, 보급로의 확보라는 점에서 나는 소하에 대적할 수 없다. 백만 대군을 마음대로 지휘해서 승리를 거두는 점에서 나는 한신을 당해 내지 못한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걸출이라 해도 과한 인물이 아니다. 나는 이 걸물을 구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은 이유다. 한편 항우는 범증이라는 걸물이 있었지만, 그는 그 한 사람도 쓸모 있게 다루지 못했다. 이것이 항우가 내 먹이가 된 이유다."


유방과 항우의 대결. 초한전유방과 항우의 대결. 초한전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여기에서 유방의 예를 든 장량, 소하, 한신 세 사람은 하나하나 능력을 비교하면 모두 유방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그런 유능한 부하들의 심복을 받고 더구나 그들을 쓸모 있게 다룬 점이 유방이 승리한 원인이다. 단, 이것이 요긴한 점이지만 잘 다룬다고 하더라도 거만한 태도로 턱으로 부린다거나 손발처럼 부렸다는 뜻이 아니다.


유방의 부하 다루는 방법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먼저 첫째는 부하들의 의견에 귀를 잘 기울인 것이다. 유방이라는 사람은 스스로 지시나 명령 같은 것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어떤 문제가 생긴다거나 벽에 부딪힌다거나 하면 "어떻게 된 일이냐?"하고 부하의 의견을 듣는다. 의견을 들은 뒤 결단을 내린다. 이것이 유방의 방식이다.


두 번째 특징은 성공 보수를 듬뿍 주는 것이다. 전쟁하면 당연히 전리품이 수중에 들어온다. 그러나 유방은 그것을 한 푼도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넣지 않고 모두 공적을 세운 부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이익을 거두었을 때 선심을 써서 보너스를 두둑하게 주었다고나 할까?


부하로서는 자기 의견이 채택되면 기쁘고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떻게든 성공시키려고 애를 쓴다. 그런 작용에 맞게 성공 보수가 약속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싫더라도 힘을 낼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 부하들의 의욕을 끌어낸 것이 유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