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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 관미성 전투, 병관좌평 진가모는?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0. 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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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 관미성 전투, 병관좌평 진가모는?


어제 사극 광개토왕 57편을 봤습니다. 수전에서 아신왕에게 패하는 고구려군의 모습과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관미성 내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관미성에선 아신왕과 대요승의 갈등이 백제군의 패배를 암시하고요.


광개토왕 재위 첫해인, 392년,

7월 - 병력 4만으로 백제 전방의 성 10개를 함락,

9월 - 거란을 공격해 후방을 안정시킴,

10월 - 곧, 관미성을 공격해 20일 만에 점령.

사실, 병관좌평 진가모가 관미성에서 광개토왕과 맞섰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병관좌평 진가모를 관미성과 별개의 인물로 처리해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광개토왕 태왕북벌기


그렇지만, 고국양왕 때, 도곤성(도압성)을 함락한 공로로 병관좌평(국방부 장관)에 오를 인물이라면, 직간접적으로 병관좌평 진가모를 관미성과 연관시키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광개토왕 57편에선 대요승이란 가상의 인물이 등장해요. 관미성에 있는 백제 장수들 사이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무리한 설정이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런데도, 병관좌평 진가모가 생략되는 건 아쉽네요. 16관등 중 제1품인 병관좌평 진가모가 대장군인 대요승 보다 적은 비중일 수도 있을지...의문이기도 하고요.


백제 관미성, 광개토왕 관미성백제 관미성, 광개토왕 관미성


그리고 광개토왕의 공격 경로를 살펴보면, 4만을 동원해 남진합니다. 백제 10개 성을 함락했는데, 남으로 향한 4만 외에도 거란을 공격하는 병력이 더 있었습니다. 2:8, 또는 3:7의 비율로 믿을만한 장수들을 북과 남으로 배치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일곱 방향에서 관미성 공격이 가능했던 이유도 관미성 인근의 성들을 함락시킨 덕택이겠고요. 20일이나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관미성을 고립시켰거나, 기록에 남지 않은 지략싸움이 있었던 것이리라 생각해요.


광개토왕 관미성 전투


만화 태왕북벌기에선 처로라는 사람이 관미성주로 나왔었고, 광개토왕에선 대요승이 관미성에 엮이게 되네요.


물론, 병관좌평이 되자마자 병에 걸려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을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기록에 남은 병관좌평이 생략되는 건 아쉽습니다. 지금 시점에 대요승을 병관좌평 진가모라 불러도 이야기 진행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이전과는 다르게 시나리오 자체는 나아진 것 같아요. 서로를 속이려는 첩보 행위도 그렇고, 대요승의 기습이 실패할 것으로 생각했는지 아신왕은 단독으로 고구려 본영을 기습하죠. 이런 첩보, 기습 작전은 흥미로웠습니다.


아... 그래도 조그만 스케일은 생각할수록 아쉽네요 ㅡ,.ㅡ


국내성에서 광개토왕 왕후가 제일 윗자리도 아니고 대신들과 섞여서 회의하는 것도 이상하고, 죽으려고 환장했는지 일부러 말에서 내려 싸우는 장수들도 이상하고.. ㅎㅎ


광개토왕 관미성


ps1. 중국 사극에선 이렇게 단 한 명의 주인공만 영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한무대제만 봐도 무제의 아버지 경제와 측근 조조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부분을 할애하죠. 아마도 같은 맥락이면 광개토왕 아버지인 소수림왕부터 시작해 그 시기의 위인들부터 다뤄가며 그들 모두가 영웅으로 보이듯 만들어야겠죠.


우리나라 사극 문제 많아요. 주인공 하나 띄우자고 다른 조상님들 머저리 등신으로 만들고 있으니깐요.


ps2. 제작비 탓인지 아담한 규모의 고구려군 본영은 안습이었습니다.


ps3. 도대체 폐하라 불리는 사람이 왜 최전방에서 백제 장수하고 한판 붙나요? 최고사령관은 최전방에서 싸우지 않습니다.


ps4. 겨울이라 말들이 추워서 그럴까요??? 말들이 안 보이네요.


지난 2011년 12월 18일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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