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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문장가 하안의 동성애와 오석산(중금속) (삼국지 일화)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2. 2. 08:10

위나라 문장가 하안의 동성애와 오석산(중금속) (삼국지 일화)


삼국지 일화. 하안의 동성애


세설신어

하평숙(평숙은 위나라 문장가 하안의 자)은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얼굴이 유달리 희었다. 위 명제明帝는 그가 얼굴에 분을 바른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마침 여름날에 그에게 뜨거운 떡을 주었더니, 그것을 먹고 땀을 잔뜩 흘렸다.


그가 붉은 옷으로 땀을 닦으니 얼굴이 다시 희어졌다.


※ 부분하랑溥粉何郞 - 하안의 얼굴이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얗다. (오석산의 영향도 있음)


자치통감資治通鑑

위나라 문장가 하안은 자신을 좋아했다. 백분白粉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걸을 때는 자기 그림자를 쳐다봤다. (자기애와 동성애)

삼국지 배송지 주

하안의 부인이 그의 어머니 패왕태비沛王太妃(위나라 문장가 하안은 하진의 손자이자 조조의 사위)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하안의 몹쓸 짓(동성애)이 날로 심해지고 있으니, 어떻게 몸을 보전할까요?"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하안을 질투하지 마라!"


하안이 화장하는 모습(상상도)[삼국지 일화] 하안이 화장하는 모습(상상도)


하안이 스스로에게 즐거워하는 모습(상상도)[삼국지 일화] 하안이 스스로에게 즐거워하는 모습(상상도)


참고 사항


※ 남자가 분을 바르는 것은 위진남북조시대에 크게 유행한 풍속.


※ 안지추顔之推의 가훈家訓에는 양조梁朝(위나라가 대량大梁[카이펑開封]으로 천도한 뒤 고친 이름) 전성시대에 명문가의 자제들은...... 옷에 향을 뿌리고 수염을 깎지 않은 자가 없었다. 얼굴에 분을 바르고 붉은 연지를 찍었으며, 차양을 길게 늘어뜨린 수레를 타고, 굽이 높은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바둑판 모양으로 짜인 방석에 앉았으며, 오색 실로 짠 큰 베개에 몸을 기댔다. 좌우에 공동품을 진열해놓았고, 한가로운 모습으로 들어오고 나가니 이들을 보면 마치 신선 같았다. (동성애를 즐기던 위나라 문장가 하안도 이렇게 행동했을 가능성이 높음)

※ 위진남북조시대의 성 관념은 송나라 이후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해블록 엘리스Havelock Ellis의 성 심리학 연구Studies in the Psychology of Sex에 따르면, 남자가 하얀 분과 연지를 바르거나 화려한 여장을 즐기는 것은 일종의 '성도착증'으로, 일명 '에오니즘(Eonism, 복장 도착증)'이라고도 한다.


곧 이성이나 동성을 유혹하려는 것으로 때로는 동성애와 관련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동성애와 연관 지어 설명할 수도 없는 성적 심리이다.


하안의 연관 검색어에 오른 이준기[삼국지 일화] 하안의 연관 검색어에 오른 이준기

(중국의 어떤 네티즌이 하안을 소개하며 이준기 사진을 올려놨음...)

(그래서, 하안 연관 검색어에 이준기 사진 뜸. 히잉...ㅠㅠ)


위나라 문장가 하안과 오석산


세설신어 언어言語

하평숙은 "오석산을 복용하면 병이 치료될 뿐 아니라 정신이 맑아지고 생각이 트인다."고 말했다.


한식산론寒食散論에 이르기를,


"한식산의 처방은 한나라 때 시작되었으나 복용하는 사람이 적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위나라 상서 하안이 처음으로 그 신묘한 효과를 체험하니 이로써 세상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그것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찾아갔다." (동성애를 즐기는 무리일 가능성도 있음)


하안의 文言文, 동성애와는 별개로 그는 뛰어난 문장가[삼국지 일화] 하안의 文言文, 동성애와는 별개로 그는 뛰어난 문장가


자치통감의 호삼성 주

진나라 사람 가운데 한식산(오석산, 한석산 등으로도 말함)을 먹는 자가 많았으며 지금은 천금방千金方에 그 방법이 적혀 있다.


소식蘇軾(소동파)은 오석산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세상에는 종유석과 오두烏頭(바꽃의 어린뿌리. 열이 많으며 독성이 강한 약재로 중풍, 신경통, 관절염 따위에 씀)를 먹으며 주색에 빠져 장수를 구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것이 하안으로부터 시작됐다.


위나라 문장가 하안은 어려서 부귀해진 까닭에 한식산을 복용하여 그 욕구를 이루고자 했다. 대게 그것을 복용한 사람은 등에 악창이 나고 그 뒤에 구토 증세가 따랐다."


월왕越王의 묘에서 발굴된 오석산의 다섯가지 재료[삼국지 일화] 월왕越王의 묘에서 발굴된 오석산의 다섯가지 재료


진서 황보밀전皇甫謐傳

(하안)는 절도를 벗어났기 때문에(약을 과다 복용했거나 재료 배합의 실수를 이르는 것 같다) 독 기운으로 고생했다. 지금까지 7년 동안 엄동설한에도 웃통을 벗고 얼음을 먹었으며 여름이 되면 더욱 가슴이 답답해졌다. 기침을 하고 기가 역류했으며, 때로는 학질에 걸린 것처럼 몸을 떨기도 하고 한기가 든 것 같기도 했다.


숨이 차올랐으며 사지가 시리고 부어올랐다. 이제는 상태가 더 악화하여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와 형제들은 그를 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고 처자식은 언제라도 그를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먹기 좋게 제조가 끝난 완성된 오석산[삼국지 일화] 먹기 좋게 제조가 끝난 완성된 오석산


청나라 사람 유정섭의 말

진나라 사람들의 산散과 당송시대 사람들의 단丹은 모두 사악한 물건으로 요즘의 아편에 비유할 수 있다.


음, 확실히 위나라 문장가 하안이 특이한 인물이긴 하네요.


ps1. 참고로 백제에서도 오석산을 사용했다는 작은 증거도 하나 있습니다. 기사 - [문화재@과학] 백제 귀족 마약의 일종‘오석산’즐겼을까 (2010년 4월 14일) [클릭]


백제 사비시대 목간[삼국지 일화] 백제 사비시대 목간


부여군 쌍북리 일대 ..... 먹으로 쓴 글씨 5자가 확인되는 백제 사비시대 목간 1점 등을 발굴...

연구원은 목간의 글씨를 ‘五(혹은玉)石O十斤’ (O는 미판독)이라 밝혔다.


서예학자 손환일 박사는 이를 ‘五石九十斤(오석구십근)’이라 판독했다...

옥玉자가 아닌 오五자가 분명하며...


ps2. 오석산에 대해 참고할만한 다른분의 포스트



ps3. 중금속을 뱃속에 들이붓고도 잘 살며 아이까지 낳았던 것을 보면 사람의 적응력이란 게 보통은 아니란 생각도 듭니다.


참조 -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

위나라 문장가 하안의 동성애와 오석산(중금속) (삼국지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