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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10국 시대 남당 이후주, 무능했던 일화 9가지 (중국 오대십국)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1. 24. 08:38

5대10국 시대 남당 이후주, 무능했던 일화 9가지 (중국 오대십국)


1. 오대십국 시대 송나라 태조 조광윤에게 항복하며,


"신(5대10국 시대 남당 이후주 본인)은 본래 학문을 하던 사람으로, 재주가 없음을 실로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학사에서 나온 후부터는 마음이 명리와 봉록에서 멀어졌고, 부형父兄의 그늘에서 하루하루 즐기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소보巢父, 허유許由(요 임금 때의 은사)의 발끝이나 따라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백이와 숙제의 높은 뜻을 흠모했습니다......"


남당 이후주 송태조 조광윤에게 항복[5대10국 시대 남당] 이후주 송태조 조광윤에게 항복


항복문서를 바치는 이욱[중국 오대십국 시대] 항복문서를 바치는 이욱

2. 속자치통감 8권 (5대10국을 포함한 역사서, 청나라 때 지어짐)

남군유수南郡留守 겸 시중侍中인 임인조林仁肇의 위명이 높아 송나라 조정에서 그를 꺼렸다. 그래서 몰래 사람을 시켜 그의 초상을 그리게 한 다음 사신을 접대하는 별실에 걸어두었다. 남당의 사자에게 이를 보여주며 누구인지 묻자 사자는 임인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말하길,


"임인조가 장차 투항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우선 이것을 신표로 가지고 있으라고 하였소"


라고 하고, 다시 빈 공관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곳은 그를 위해 마련해놓은 곳이오."


이를 전해 들은 이욱은 연유도 묻지 않고 임인조를 독살했다.


3. 속자치통감 8권

나라가 갈수록 기울어가자 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마음대로 사람을 등용했다. 이에 강남의 내사사인 번우瀿佑가 분개하여 상소를 올리며 조정에서 격한 논쟁을 펼쳤다. 문무대신들을 두루 돌아보며 비난을 퍼부었고 그 말이 심히 격하고 공격적이었다.


... 이욱이 번우의 엇나감을 의심하며 그를 벌하려 하자 번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대 10국 남당 이후주 중국[오대십국 지도] 남당 이후주 중국


4. 속자치통감 8권

유능한 장수들이 모두 죽었을 무렵, 신위통군도지휘사神衛統軍都指揮使 황보계훈皇甫繼勛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황보휘皇甫暉의 아들로 나이가 아직 어렸다.


이욱은 그에게 병권을 모두 위임했다. 계훈은 원래 귀하게 자라 성격이 교만하였으며 애초부터 싸우다 죽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임금이 속히 항복하길 바랄 뿐이었으나 감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매번 부하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북군(5대10국 시대 송나라 병사)이 저렇게 강한데 적수가 될 자가 있겠는가!"

또한 군대가 패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금세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내 절대 못 이길 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죽기를 각오한 병사들을 모집해 야밤에 진영을 나가 다시 싸우고자 하는 부장副將들이 있으면 계훈이 그의 등을 채찍으로 내리쳐 가두었다.


이로써 병사들의 분노를 샀다.


남당 병사들의 전쟁 后周和南唐投入兵力[중국 오대십국 시대] 남당 병사들의 전쟁 后周和南唐投入兵力


그달, 이욱(이후주)이 성을 둘러보러 나갔다가 송나라 군대가 성 밖을 에워싸고 군기가 가득 휘날리고 있는 것을 보더니 그제야 두려워하며 계훈을 옥에 가두었다.


그를 죽이자 군사들이 달려들어 칼로 그의 살을 발라내니 순식간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황보계훈, 황보휘의 아들

은 어려서부터 자사인 아버지 밑에서 종군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아버지가 전장터에서 사망하자 뒤를 이어 장군의 위에 오릅니다. 그런데, 집안에 재산도 많고 집도 으리으리하며 그 안에는 미녀들이 많았습니다.


황보계훈은 처음부터 병사들을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데 이용했고 전투에서도 매번 패하기도 여러 차례, 그때마다 이욱에게도 항복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아버지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은 추호도 없던 것이었죠. 이런 황보계훈에게 병권을 맡긴 이욱이었습니다.


5. 속자치통감 8권

(5대10국 남당 후주인 이욱은) 사람을 보내 신위군도神衛軍都 우후虞候 주전빈朱全贇을 불러 상강上江으로 구원에 나서도록 하였다. 전빈은 10만에 달하는 군대를 이끌고 호구湖口에 주둔했다.


여러 장수가 강물이 불었을 때 속히 공격하자고 청하자 전빈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 전진하면 적이 반드시 우리 뒤를 점령한 것이오. 싸워 이기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군량마저 끊길 것이니 어찌하면 좋겠소?"


이에 남도유수南都留守 시극정柴克貞에게 서신을 보내 대신 호구에 주둔해줄 것을 청했으나, 극정은 병을 핑계로 시일만 끌었다.


전빈도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했고, 이욱이 여러 번 재촉하였으나 전빈은 말을 듣지 않았다.


6. 신오대사

성격이 교만하고 사치스러우며 음악과 여색을 즐기고 불교를 좋아했다. 고상한 이야기를 하며 정사는 돌보지 않았다.


남당후주 이욱[중국 오대십국 남당 후주] 이욱, 이후주


7. 송왕영宋王栐 연익이모록燕翼诒谋录

강남의 이욱은 불교를 맹목적으로 추앙했다. 그리하여 집을 나가 승려가 되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송 태조가 남으로 내려와 다시 이들을 정리하는데, 그 수가 너무 많자 태종은 아예 그것을 금지해버렸다.


8. 강표지江表志

강남의 이욱은 중원에 공물을 바쳤는데 한 달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십수 년이 흐르자 물자가 바닥나버렸다.


9. 육유陸遊 남당서南唐書

나라가 그로 인해 다소 안정되기를, 십 년 하고도 오 년이 더 지속하였다.


영화 조광윤과 이후주영화 조광윤과 이후주


5대10국 시대 남당 이후주, 무능했던 일화 9가지 (중국 오대십국)